정부가 교육개혁을 세계화의 최우선과제로 삼은 이래, 교육부는 연달아 혁신적인 교육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중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는 자유경쟁체제의 도입이고, 또 하나는 97년부터 시행되는 국민학교 조기영어교육의 실시이다.전자는 결국 양질의 교과서만이 교육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자는 우리의 죽은 영어교육을 산영어 교육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각 바람직한 제도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토플 종합성적 세계 118위와, 토플 청취능력 세계꼴찌에서 두번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화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어차피 이미 필수적인 세계어가 되어버린 영어교육의 활성화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정책들에는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 예컨대 전자의 경우에는 교과서채택을 위한 출판사들의 로비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후자에는 자격있는 국민학교 영어교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일보를 비롯한 국내언론의 보도에서는 이와같은 문제들에 대한 심층보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국민학교는 학생들이 모방력이 강하고 발음과 억양이 굳어지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런 학생들의 영어교육에 영미인교사가 아닌 단기연수과정을 수료한 서투른 억양의 한국인교사들을 투입할 경우, 차라리 조기영어교육을 실시하지않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언론은 지적해 주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교육투자의 주대상도 과거처럼 인건비보다는 시설투자비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는 점도 한국일보같은 주요일간지들이 지적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장나거나 수명이 다한, 그래서 화질이 나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현재의 중고등학교 교실의 낡아빠진 텔레비전이나 녹음기로는 애당초 양질의 외국어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그러한 심층보도보다는 어쩐지 아직도 주어진 보도자료만을 충실히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 예컨대 두방송사에서 진행하는 9시뉴스는 놀랍게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뉴스를, 똑같은 순서대로 보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신문의 경우에도 별차이가 없다. 특히 뉴스보도의 경우에는 더욱 더 변별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획일적인 보도에는 사건의 핵심과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독특하고 심층적인 기사가 나올 수 없음은 물론이다. 각방송사나 일간지들이 각기 독특하고 깊이있는 보도와 기획으로 스스로를 변별할 때 시청자들과 독자들의 신뢰는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스포츠가 국민들의 애국심고취와 민족적 단합, 그리고 정신적 마취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우리도 스포츠를 레저로 즐기는 선진국형 스포츠시대로 진입했다. 스포츠는 신문과 방송에 독립된 지면과 프로그램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일반뉴스속에도 등장할 만큼 생활속에 보편화하였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된다」는 비스포츠맨적인 태도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사회 각분야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백화점의 사기세일과 가짜상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또 정당화된다. 「농구대잔치」의 극성맞은 오빠부대의 태도 역시 한국인특유의 승부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미래의 강력한 「아줌마 군단」이 되어 곧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할 오빠부대의 넘치는 저 에너지를 농구경기같은 신체적 경기가 아닌, 불량식품 불매운동같은 「정신적운동」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을까. 그와같은 일은 역시 「사회의 오피니언리더」인 언론의 역할이다.<서울대 교수·영문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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