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자력 발전사를 보면 눈부시다. 70년대 중반 박정희대통령이 카터 미행정부의 주한미군철수 거론과 관련해 원자무기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원자력 건설을 꿈꾸기 시작했다가 곧 무기생산계획을 버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재빨리 눈을 돌려 76년 고리의 원자력 발전소 1호기를 가동시킨 이래 현재까지 1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갖고 있으면서 총국가소요 전력의 60%가까이를 원자력을 통해 만들어 쓰고 있는 중이다. 원자력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오늘날과 같은 산업발전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은 비밀에 쌓여온 이 핵기술의 비밀을 신속히 배워 첫 원자력발전소를 세운지 10년만인 77년 스스로 한국형원자력발전소를 짓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기술은 어느 것이나 그런 속성이 있는 것이지만 특히 핵무기개발과 연관돼 있는 원자력 기술은 기술을 가진 자가 웬만해서는 이를 내 주려 하지 않는 큰 까다로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원자력기술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 기술을 몰라 엉터리로 들어간 돈이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어떤 외국기술자는 온도조절기의 눈금하나를 조절해 주면서 눈금을 아래 위로 높였다 낮추는 행위를 반복해 1일 1천달러가 넘는 기술료를 30일어치인가를 받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77년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월성3호기의 NSSS(핵증기공급체계)의 설계를 맡으면서 한국이 스스로 핵발전소건설을 해나가기 시작했을 때 한국시장의 진출기회가 없어진 세계의 저명 원자력건설회사들은 『한국에 무슨 능력있는 원자력기술자가 있어』 『한국이 설계하는 원자로가 과연 안전할 것인가』라는 등의 중상모략도 많이 퍼뜨린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 월성3호기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또 권위있는 미국 아이다호연구소의 안전검사를 비롯한 2년간의 안전성검사를 거친후 현재 시험가동되고 있으며 96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한국형으로 이름붙여진 이 1천㎿짜리 원자로는 월성 3호기에 이어 월성 4호기를 비롯해 울진 3, 4기등 3대가 현재 한국에 건설되고 있다. 북한에 2기를 건설해 주게 되면 한국형 원자로는 모두 6기가 된다.
한국형은 원래 미국 CE사의 1천3백㎿짜리를 기본모델로 해 한국과 같은 규모에 알맞게 크기를 줄이고 안전성을 더 높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현재 한국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돈은 한국이 내고 원자로는 한국형보다 어울리지 않게 규모가 크며 수송료 인건비등을 감안할 때 엄청나게 비싼 미제나 다른 외국제를 건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한국이 싫다는 이유라면 몰라도 정치적 이유나 상표문제때문이라면 한국형건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북한에 원자로를 직접 수출하는 형식이 아니며 다국적기구인 KEDO(한국에너지개발기구)가 먼저 북한과의 계약한 후 한국은 이 KEDO의 주계약자가 돼 북한에 들어가게 된다. 북한이 미제를 쓰고 싶으면 건설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얼마든지 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도 상당한 외제부품을 써야 완성차가 되는 것처럼 주요설계만 해도 2천건이 넘는 원자로의 경우는 필요에 따라 미제나 러시아제 상표를 많이 써야할 것이다.
북한이 원자로건설이익을 전면포기하지 않는다면 한국원자력 과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한국형원자로가 남북한간의 진정한 대화통로를 여는 길목역할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