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독립문제는 반세기에 걸친 쟁점이다.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파란많은 정치역정과 역사속에 부침하면서 아직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뭣때문에 이처럼 오랫동안 매듭지어지지 않고 내려왔는가.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두 당사자인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원(구재무부)사이의 영토전의 양상을 띠어 왔기 때문이다. 한은독립성의 문제를 가름하는 척도는 어느것이 한은의 주요목적으로 규정된 「통화가치의 안정」과 「은행·신용제도의 건전화와 그 기능향상에 의한 경제발전」에 효과적이냐가 돼야 한다. 한은은 바로 한은법에 명기된 이 규정에 근거하여 독립성의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인정되고 있으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원측의 반론도 강한 논리성과 합리성이 있다. 재정경제원측은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80∼ 90%가 통화·신용정책이다. 통화·신용정책을 주도하는 한은이 제4부처럼 독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올바른 말이다. 정부가 성장이든 안정이든 경제를 의도한 목표대로 이끌어가는데 사용하는 양대정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신용정책이다. 재정정책은 세입·세출등이 미리 결정되므로 경기등 유동적인 경제상황에 대처하는데 신축성이 결여돼 있다. 이에 반해 통화·신용정책은 기동력이 크고 또한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 단기적인 경기대응수단으로서는 통화·신용정책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정부가 한은의 강한 독립요구에 역시 상응하는 거부 반응을 나타내온 것이다. 통화·신용정책을 누가 주도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도 결국 실증적으로 어느쪽이 주도하는 것이 경제에 더 유리하다고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미국과 독일은 중앙은행의 독립이 제도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보장돼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위(FRB)는 의회의 권한을 위임받은 형태로 행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독일의 연방은행(분데스방크)은 연방헌법으로 독립이 보장돼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대장성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제도적으로 지배하게 돼 있다. 대장성이 정책적인 지휘·감독은 물론 일반은행에 대한 감독권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미국·독일보다 물가가 불안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물가안정과 정의 함수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을 방만하게 풀거나 정치적인 의도에서 멋대로 푼다면 인플레가 일어날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플레는 임금·지대·원부자재대·금리등 요소비용의 증대와 물류비용의 증가로 일어날 수도 있다. 환율과 세금에 의해서도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정부도 언제나 물가안정을 경제정책의 단골메뉴로 내놓는다. 한은의 독립성이 통화가치안정의 전부인 것처럼 주장되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인플레억제효과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이 평행선을 그을 수는 없다. 미국, 독일, 일본등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세계3대경제대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든 아니든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협의와 협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은 중앙은행측에서 정부측의 요구를 경청,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일본은 대장성측이 부여된 권한의 행사를 자제, 중앙은행으로서 일본은행의 권한과 권위를 존중, 사실상 상당한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현안의 한은독립문제를 보는 시각과 해법의 발상도 바꿔야겠다. 한은과 재정경제원은 「적대적인 대립」보다는 「화해와 협동」의 관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양 기관은 감정적인 대립의 골까지 깊어 상호간의 이해와 양보에 의한 타협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해야 한다. 사공일전재무부장관은 『중앙은행문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다』며 『당사자사이에 경제원리대로 풀어야지 여야의 정치협상으로 타결돼서는 경제정책을 크게 그르치게 된다』고 했다. 정부측은 속전속결로 나오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한은측과 타협해야 한다. 김명호 한은총재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