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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광개토왕비탁본 종합평가실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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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광개토왕비탁본 종합평가실시 계획

입력
1995.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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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년간 방치됐던/왜곡의 역사 구명기대/한·중·일 비상한 관심속/내달 세미나 등 잇달아/동북아 고대사 연구에/명징한 검증 계기될듯 1천5백여년간 방치됐던 광개토왕릉비 비문의 왜곡사실이 밝혀질 것인가. 문화체육부가 24일 이 탁본에 대한 종합평가를 실시키로 함에 따라 정확한 탁본시기와 비문의 내용 등이 앞으로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중일 3국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세미나도 3월부터 열릴 계획이어서 이 탁본은 동북아 3국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기아그룹(회장 김선홍)에 의해 국내에 반입돼 24일 독립기념관(관장 최창규)에 공식기증된 「광개토왕릉비문 초척본」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은 비상하다. 이 탁본이 1880년대에 만들어진 최초의 탁본이라는 것이 검증되고 그 내용에 대한 연구가 완결되면 한중일 고대사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탁본은 한반도 일본지배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본 육군참모본부 탁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뒤엎는 등 잘못된 사실을 새롭게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내 반입후 1차검증을 마친 문화재연구소와 사료분석활동을 펼친 독립기념관은 『좀더 세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지만 『잘못된 우리 역사를 되살릴 수 있을 것같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의 학자들도 이 탁본이 일본 탁본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체계적 연구에 동참할 뜻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기념관과 기아그룹측에 의하면 일본 탁본을 옹호해 온 중국 사회과학원 쉬젠신(서건신)교수 등 중국 학자들도 이 탁본을 보고 『새로운 부분이 많이 밝혀질 것』이라며 그 동안의 학설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한국 반입전 중국에서 공식감정에 참여했던 쉬젠신 교수 등 중국학자 6명은 이미 「1880년께 찍혀진 초탁본」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들은 독립기념관의 초청으로 곧 방한, 한국학자들과 세미나를 갖고 이같은 견해와 그 근거를 밝힐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탁본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료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1880년대에 이번 초탁본처럼 말끔한 탁본을 제작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는 점, 탁본이 서예교본식의 서첩형태로 돼 있는 점 등을 들어 가장 오래된 탁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이다. 현재까지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은 중국정부의 공식감정을 받았다는 점, 국가기관인 독립기념관과 문화재연구소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 등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독립기념관은 한중일 3국간 미묘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므로 연구가 완결된 후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현재로서는 명확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국내학자들도 다양한 이견을 제시하고 있어 앞으로의 연구결과를 지켜보아야한다. 따라서 3월중순께 있을 한중일심포지엄의 연구결과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탁본은 비문 4면의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 유일한 서첩본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자료에만 의존해야 했던 국내 학계의 연구풍토에 커다란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또 일본본과는 다른 글자가 나타나 연구가치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김철훈 기자>

◎임나일본부란…/일 주장 “4C말 가야에 세운 식민통치기구”

 「임나일본부」란 4세기말 일본의 야마토(대화)정권이 한반도 남쪽 가야지방에 진출, 식민지경영을 위해 설치했다는 통치기구. 일본은 광개토왕릉비 비문중 신묘년 기사일부를 조작한 내용과 일본서기의 기록등을 근거로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사실처럼 주장해 왔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합리화에 이용돼 한일 사학계 최대 쟁점중 하나였으나 일부 일본학자들도 이제는 근거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의 성격에 대해서는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는데 중심적 통치기관이었다는 「선출기관설」 ▲가야지방에 몰려 살던 왜인을 통제하는 행정기관이었다는 「가야의 왜설」 ▲야마토정권의 분국으로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 안에 있었다는 「분국설」 ▲백제가 가야지역에 세웠던 「백제군사령부설」 등 여러 가설이 있다.<박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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