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연 53권꼴… 문예·추리물 문고판 늘어/출판사 4,300여곳… 매출 2조5,000억엔 돌파 도쿄(동경)의 지하철은 출퇴근시간이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그 붐비는 틈바구니속에서도 문고판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승객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동네단위로 하나씩은 있는 구립도서관에는 주부들과 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연간 2조5천억엔 규모의 거대한 출판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이같은 독서열기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식어가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잔열이 가시지는 않았다. 일본서적출판협회에 의하면 지난해 일본전국에서는 단행본과 잡지를 합쳐 모두 64억부가 판매돼 1인당 연간 53권정도를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갓난아기와 독서가 불가능한 노년층을 제외하면 이같은 수치는 훨씬 늘어난다. 또 1인당 연간 서적구입비가 전국평균으로는 2만엔, 도쿄의 경우는 3만6천엔으로 나타나 독서열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같은 독서열에 힘입어 지난해 일본출판계는 흔히 「헤이세이(평성)불황」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의 와중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매출 2조5천억엔을 돌파했다.
오에 겐자부로(대강 건삼랑)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고령화 사회의 가정회귀지향을 반영한 서민참가형의 베스트셀러, 서적의 가격인상등이 주변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바탕은 역시 책을 가까이하는 국민성향이라고 할 것이다.
일본의 출판시장에서는 약 4천3백여 출판사가 움직이고 있으나 고단샤(강담사) 슈에이샤(집영사) 쇼가쿠엔(소학관)등 3대출판사를 비롯한 상위 1백개사가 전체시장의 80%정도를 장악하고 있다.
또 날이 갈수록 잡지에 대한 재정의존율이 높아져 가는 이른바 「잡고서저」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고 문고판, 특히 그중에서도 가벼운 문예물과 수필류, 추리물등의 비중이 늘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주로 전철을 탈 때등 자투리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을뿐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심각한」 독서는 10%도 안된다는 한 조사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가벼운 독서의 대표적인 예가 만화책의 번창이다. 단행본과 잡지형태의 만화책을 합쳐 연간 22억권이 팔리고 있고 지하철에서 보고 버리게 마련인 월간이나 주간 만화잡지중에는 매주 또는 매월 6백만∼7백만부씩 팔려나가는 것들도 있다.
대담한 성묘사를 서슴지 않아 유해도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면서도 만화시장은 날로 팽창하고 있으며 출판사들도 자금회전이 빠른 만화시장을 돈방석으로 여기고 치열한 판매경쟁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는 경향중 눈에 띄는 것은 「헤어누드」로 불리는 전라사진집의 출판붐과 90년부터 시작돼 꾸준한 시장확대를 거듭하고 있는 전자출판이다.
어느 서점이건 누드사진집과 성인용 만화코너는 북적거린다. 또 붐비기만하고 그냥 가는 얌체독자들을 막기위해 이런 책들은 한결같이 비닐로 단단하게 포장돼 전시된다.
CD롬으로 대표되는 전자출판은 아직까지는 대개가 부록형식으로 나오고 있으나 전자사전 백과사전등이 활발하게 출판돼 보급되고 있어 기존출판사들도 앞을 다퉈 전자출판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학의 도서관이 비고 어린이들은 아동도서코너보다는 컴퓨터게임 소프트웨어코너에 몰려드는등 젊은 세대의 책 기피현상이 출판왕국 일본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출판은 출판업계의 장기적인 탈출구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한편으로 편의점을 통한 도서판매가 매년 두자리수의 신장세를 보이면서 매출고가 연간 4천억엔을 넘어서 서점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만화와 잡지, 간단한 추리소설과 저질연애소설이 주종을 이루지만 전체판매의 절반이상을 편의점에 의존하고 있는 출판사도 있는 실정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최대출판사 「강담사」/대졸자 희망직장 “1순위”… 연 1,464종 신간 발행/“86년 역사… 「재미있고 도움되는책」 제작 성장배경”
일본의 대학졸업생들이 희망 직장을 꼽을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곳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의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강담사)다. 특히 인문계열 전공 졸업생중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우선적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고단샤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이같은 명성의 배경은 물론 높은 수입과 탄탄한 재정적 기반, 그리고 「출판사는 지식인이 모이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때문이다.
고단샤의 연봉은 대졸초임을 기준으로 했을 때 25만엔 가량으로 일반 회사가 15만∼20만엔 가량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봉급이다.
일본출판협회 통계에 의하면 자본금 3억엔에 1천1백여명의 종업원을 가진 고단샤는 90년 한해동안 1천6백95억엔으로 최대 매상을 올렸고 신간서적 발행종수도 연간 1천4백64종(91년기준)으로 역시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86주년을 맞은 고단샤의 성장배경에 대해 아쿠츠 마사루(아구진 승) 국제실 담당부장은 『오직 한가지 「재미있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드는 것」이며 이같은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출판시장에서 만화와 잡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함을 넘어 절대적인 수준이다.
91년 기준으로 2조2천7백억엔 규모의 시장중 60%이상을 잡지류가 차지하고 있고 만화단행본이 89년 1천6백93억엔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문고시장을 앞서기 시작, 현재 20% 에 해당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출판풍토에서 만화와 잡지를 주력상품으로 해 이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고단샤의 성장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고단샤의 과학적인 판매전략도 한 몫을 하고 있다.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1백여개 편집팀이 주 1회씩 기획회의를 열어 출간 아이템이 정해지면 고단샤에서 지금까지 나온 10만여종의 각종 서적 통계와 1년간의 시장조사를 통해 상품성을 충분히 확인한 후 신간을 내놓는 전략을 쓰고 있다.
고단샤는 1909년 노마세이지(야문청치)에 의해 설립됐다. 노마세이지는 당시 웅변대회가 붐을 이루자 연설문 모음집 「웅변」이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처음 출판의 길에 들어섰다. 「웅변」지는 1만4천부가 판매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1920년대 들어 자신감을 얻은 고단샤는 「소년클럽」 「소녀클럽」 「부인클럽」등 8종의 잡지를 발행했으며 1925년에는 「KING」이란 잡지를 발간하여 창간호만 74만부가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또 59년에는 「주간현대」 「주간소년매거진」을 창간, 주간지붐과 소년만화잡지의 확산을 주도했다.
우리나라 20∼30대에게도 알려져 있는 유명한 야구만화 「거인의 별」과 권투만화 「허리케인」도 고단샤의 작품. 84년에는 사진집 「프라이데이」를 창간하여 사진잡지붐을 일으켰다.
현재는 창업자의 딸인 노마사와코(야문좌화자)가 사장으로 취임, 고단샤를 운영하고 있다.<도쿄=박천호 기자>도쿄=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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