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원·한은타협 기대난/이번국회 처리도 불투명/구체 해법 정치영역으로 넘어갈듯 재정경제원의 중앙은행제도 개편방침과 관련, 한국은행이 22일 공식반대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이 문제를 둘러싼 대결양상이 재경원과 한은, 여당과 야당, 정부와 시민단체등 다층적 대치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날 한은은 지난 며칠간의 침묵을 깨고 이례적으로 고강도(고강도)의 성명을 내놓았다. 김영대 이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중앙은행제도개편안을 공식 거부한데 이어 「부서장일동」명의의 밀도높은 비판성명이 뒤따랐고 노조는 전직원 서명 및 사표제출투쟁을 결의했다. 한은고위층들은 21일 청와대와 재경원을 방문, 중앙은행제도 개편안의 부당성을 설명했으며 본격적인 대국회 설득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앙은행 제도개편안을 밀어붙이려는 재경원의 「맨투맨」전략에 한은도 마침내 「올코트 프레싱」저지전술로 맞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민주당도 정부의 중앙은행제도개편안이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보장이 아닌 오히려 개악됐다면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같은 상황전개를 놓고 볼 때 ▲재경원과 한은간 타협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고 ▲어떤 형태로든 이번 국회회기중 개정한은법 및 금융감독원법의 통과는 극히 불투명해졌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재경원측도 『법안을 제출했으니 통과여부는 어차피 국회의 몫』이라며 이번 국회통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다음 혹은 그 다음 회기로 넘어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큰 어려움은 물리적으로 시간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번 국회 상임위일정은 내달 4∼6일로 잡혀 있으나 토·일요일을 빼면 실제 법심의기간은 하루 반나절에 불과하다. 여기에 최대현안인 부동산실명제법 심의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회기연장이나 여당단독의 법통과를 강행할만큼 시급한 현안은 아니라는게 국회나 재경원주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촉박한 일정과 「한은접수」란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재경원이 초강경 중앙은행제도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실제로 20일 발표된 중앙은행제도개편안 문안작성은 불과 2∼3일전에 부랴부랴 착수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안을 놓고 「국회협상에 대비한 카드」란 시각과 「반드시 원안방향대로 갈 것」이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물론 재경원은 「협상용」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협상용이라면 정부방침을 슬쩍 흘려도 될텐데 굳이 금융감독원법을 만들고 관련법률 개정안까지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이번 임시국회내 처리가 어렵더라도 중요한 것은 법통과시기가 아니라 반드시 감독원 분리·통합을 골자로 한 정부안대로 향후 통화신용정책을 꾸려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번 중앙은행제도개편안은 재경원의 의지 못지 않게 그 「윗선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말 정부조직개편이후 3원화되어 있는 금융감독기관도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실무작업이 진행됐었고 다만 경제학교수 1천명 한은독립서명을 계기로 정부로선 「맞불대응」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재경원과는 별도로 이달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금융감독제도개편방안 보고서를 작성, 청와대에 직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정부가 타협할 수 있는 폭은 ▲금통위의장추천권을 재경원장관에서 국무총리로 바꾸고 ▲정부추천 금통위원수를 조정하는등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은과 야당의 입장이 강경하고 여론도 정부안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중앙은행제도개편이란 핵심경제현안은 또다시 비전문가들인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고 말았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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