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한교수 사사방식 탈피/재즈 등 정규교과에 포함/재학생,외부어린이 파견지도도 뉴욕시 맨해튼 링컨센터안에 자리잡고 있는 줄리아드 음악원은 오랜 세월 미국 클래식 음악의 요람역할을 해왔다. 줄리아드는 지난 90년간 미국 음악의 뿌리를 튼튼히 해왔으며 미국민들이 그 풍성한 문화적 과실들을 흠뻑 맛보게 해주었다. 클래식 음악이 줄리아드를 쌓아왔다기보다 줄리아드가 미국의 클래식 음악사를 꾸며온 셈이다.
그런 줄리아드가 이제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있다. 클래식 음악시장의 쇠퇴라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환경이 줄리아드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저 시늉이 아닌, 「줄리아드 상」의 재정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몇년간 미국의 각 단위정부와 기업의 예술계에 대한 지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과정의 음악교육은 붕괴위험에 직면해 있다. 저변인구의 축소와 함께 클래식 음악관객도 크게 감소했다.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이 여파로 파산했다.
줄리아드의 문을 나서기만 하면 기다리고 있던 연주자 자리는 줄리아드 졸업생간에도 피나는 경쟁을 해야 겨우 따낼 수 있게 됐다. 수요가 줄어들면 필연적으로 공급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92년 8백22명에 달했던 줄리아드의 정원은 93년엔 7백84명, 94년엔 7백56명으로 줄어들었다.
새로운 교수진 구성과 현실에 맞는 교과과정 정비가 뒤따랐다.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다양한 연주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넓은 영역에 걸쳐 기량을 익힌 뒤 학교를 떠나게하기 위해서였다. 솔로는 물론 실내악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예술을 말로 정확히 설명하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야간학교에서만 실시해오던 세계음악, 재즈음악등의 과목을 최근 정식 교과과목에 포함시켰고, 오케스트라 취직과목과 음악 경영학과목을 신설했다.
전통적인 줄리아드식 교수방법에도 변화가 왔다. 4년간 재학내내 한 교수에게서 사사받던 방식에서 탈피, 가능한한 여러 교수의 지도를 받도록 했다. 또 합동레슨, 초빙강의가 크게 강화됐다. 주변환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깥 세계가 줄리아드에 접촉해오길 기다릴게 아니라 줄리아드가 바깥 세계에 다가가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야심찬 시도는 「뮤직 어드밴스먼트(음악 장려)」프로그램이다. 줄리아드의 교수들이 7∼15살에 해당하는 뉴욕시 어린이들을 직접 오디션한 뒤 일정 인원을 선발, 2년짜리 교육과정을 이수케 한다. 매주 토요일 이루어지는 수업에서는 스튜디오 레슨과 앙상블훈련이 함께 진행된다.
줄리아드 재학생들과 최근의 졸업생들을 인근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파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들은 미래의 음악 애호가들을 상대로 클래식은 물론 재즈까지 연주하고 가르친다. 순수 연주자로 성공할 수 있는 음악인의 수가 줄어들면서 연주와 생계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바이올린의 세계적 명조련사 도로시 딜레이교수가 94년도 가을 학기(미국의 학기는 9월에 시작)부터 실시하고 있는 「딜레이 인스티튜트」는 연주자와 교육자의 재질을 겸비한 학생을 선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딜레이 교수는 『젊은 음악인들의 70%가량은 공연만으로 생계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며 『생계를 위한 일과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신선한 음악적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줄리아드에서는 공식적으로 첫 시도인 딜레이 인스티튜트에는 현재 한국학생 1명과 중국계 학생 1명도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있는 것도 큰 변화다. 줄리아드에 진학하는 외국학생수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위상과 맞물려 있어 흥미롭다. 1950년대에는 이스라엘 학생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새 국가가 건설된 직후였다. 60년대에는 일본학생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경제부흥과 함께였다. 소연방이 붕괴된 이후 지난 몇년간은 러시아와 구소연방국가 출신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한국학생들이 줄리아드를 점령해버렸다.
7백56명의 전체정원중 한국학생의 수는 무려 91명에 이른다. 3백25명이 등록돼있는 예비학교에도 한국학생이 75명에 달한다. 다른 외국계 학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다.
한국학생들 역시 애환은 있다. 최고의 학교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는 것은 비할 바 없는 기쁨이지만 불투명한 미래가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서울대 재학중 유학온 이유정(학부 3년차)양은 『뛰어난 동료 학생들을 보면 좌절도 느끼지만 자극도 받는다』며 『다른 모든 어려움은 이를 악물고 넘길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딜레이 교수와 함께 줄리아드의 바이올린 패컬티를 이끌고 있는 강효교수는 『한국학생들은 탄탄한 기초에 수준급의 교육을 이미 받은데다 출중한 재능을 갖춘 경우가 많아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조셉 W 폴리시씨 줄리아드음악원 총장/“취직만 하면 되는 시대 끝나/졸업생들 음악계 변화시킬때”(인터뷰)
조셉 W 폴리시 줄리아드음악원총장은 『줄리아드는 언제나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을 육성하는 것에 가장 큰 교육목적을 두어왔다』면서 『졸업생들이 음악계에 취직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줄리아드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음악계를 변화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84년 총장에 취임한 뒤 「줄리아드 개혁」을 이끌어 온 폴리시총장은 저술가이자 학자이며 행정가이자 바순연주자이기도 하다.
―클래식의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음악시장이 변한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에 좌우되는 음악인이 아니라 시장을 좌우하는 음악인을 육성하려 하고 있다. 우수한 음악인들에게는 항상 수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학생수를 줄여왔는데.
『이제 이상적인 규모의 학생 수가 이루어졌다. 학생 수를 줄인 가장 큰 이유는 학교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연습시설이 부족했고 솔로연주를 할 기회가 부족했던 문제가 있었다』
―총장 취임이후 줄리아드가 많은 변화를 겪게됐다는 평가인데.
『전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기숙사를 만들고, 교내신문 창간과 학생회를 구성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다양한 선택과목들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의 범주에서 벗어난 예술분야에 대한 수용 혹은 포용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모든 학생들은 학부 4년간 전체수업의 25%를 차지하는 역사와 인문과학등의 교양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서양 클래식 음악이 아닌 세계음악과 재즈음악도 선택과목으로 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줄리아드의 교육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양 클래식 음악이 중심이다』
―줄리아드가 세계최고의 명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교수진이 우수하고 학생이 뛰어나다. 다음으로는 뉴욕시, 특히 링컨센터에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장학재단도 어느 학교보다 튼튼하다. 학교의 전통과 동창들의 영향력도 큰 힘이다』
―줄리아드는 전통적으로 외국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인데.
『예술공부를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2차대전이후 세계예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그중에서 뉴욕이 가장 중심지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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