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금리·환율 등 결정권 제도적 마련/“최종책임 정부에…” 제동장치 계속보유 「자율은 주되 독주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금융통화운영위원회를 바라보는 정부의 기본시각이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자율이고 어디까지가 독주인지를 정의하는 문제 역시 정부의 상황판단에 달려 있다. 이는 바로 통화신용정책수립의 단일최고기구로 새롭게 자리매겨진 금통위의 향후 역할과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중앙은행제도개편안으로 금통위의 「제도적」자율성은 크게 강화된게 사실이다. 시중에 돈을 얼마나 풀고 또 거둬들이고, 금리를 얼마나 올리고 또 내리고 하는 문제가 모두 금통위의 고유권역내에 들어가게 되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이번 중앙은행제도개편의 골자는 「금통위의 자율권보장을 통한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에 있다』고 밝혔다.
제도상 획기적 변화는 재경원장관이 당연직으로 맡아오던 금통위의장이 한국은행총재에게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정책수립 및 의결과정에 정부의 직접적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크게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통화신용정책의 최종 결정기관은 금통위였다. 하지만 의장이 재경원장관(과거엔 재무부장관)이었던 탓에 금통위가 결정하는 통화신용정책이 「행정중립적이고 탈정치적」이란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금통위는 「재경원(구재무부)의 거수부대」「정부결정의 추인기구」란 비아냥까지 들어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통위의장직을 한은총재가 행사할 경우 통화 금리 환율정책등은 한은의 몫으로 돌아간다. 더욱이 재경원장관이 제동없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금통위 회의소집권과 의안제의권도 폐지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적 자율권이 실제 자율적 정책수립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경원은 통화신용정책의 최대한 자율성보장을 거듭 천명했지만 「자율권을 넘어선 독주」로 판단될 때 정부의 영향력이 개입될 장치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 홍재형 부총리도 이와 관련, 『경제운영결과의 최종책임이 정부에 있는 이상 금통위와 정부간 최소한의 연결장치는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판단에 따라 「최소한」의 장치는 「최대한」의 장치로 운영될 수도 있다.
대표적 연결장치는 주요경제정책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정부와 상호협의를 의무화했다는 점이다. 금통위가 정부의 경제운영기조나 정책우선순위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때 정부는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설령 의결된 사안이라도 재경원장관은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아무리 금통위의 결정권한이 강화됐다 하더라도 미국 클린턴행정부와 의회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년이후 7차례나 공금리인상을 강행했던 것과 같은 일은 우리나라에선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한은법개정문제를 굳이 정부와 한은간 대결구도로 몰고가지 않는다면 ▲한은총재가 금통위의장를 겸하는 것이 아니라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겸하고 ▲한은총재 추천권을 재경원장관이 가지며 ▲9명의 금통위원중 정부몫이 6자리나 되는 것등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재경원은 현재 「전문성이 높고 연륜높은 인사」를 금통위원 인선기준으로 정했다. 또 지금처럼 1주일에 한번씩 회의에 참석, 현안이나 듣고 가는 형식적 운용에서 탈피, 3명이내의 금통위원은 상근직으로 정해 금통위의 운영에 내실을 기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금통위의장 및 위원들에 대해선 「최대한의 신분보장」은 약속하되 법률로 못박지는 않을 방침이다.
금통위의 제도적 자율권은 커졌지만 권한의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결국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는 셈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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