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야누스적 존재다. 경쟁을 촉진시켜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새로운 재화를 개발해내는 창조의 주동력인 동시에 기존의 사회질서를 파괴하면서 생존경쟁의 낙오자를 대량 생산해내는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멕시코는 이에 너무나 무지했다. 1980년대 이전에는 경쟁의 낙오자를 구한다면서 과다한 재정보조와 관세인상에 나섰다가 결국은 시장의 창조성을 파괴하고 총체적 경제위기에 처했다. 반면에 1980년대 후반부터는 시장의 생득적 우월성을 확신하면서 초강경 통화긴축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결성에 동의하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회원국 자격을 취득했다.
늘어만 가는 절대빈곤층에게 구제의 손길을 보낼 겨를이 더이상 없다는 생각이었다. 살리나스 전임대통령은 역내 무역장벽을 허물고 환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시장의 창조성이 저절로 되살아나 재기의 새싹이 경제 전역에 솟아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낙오자가 자신만을 탓하면서 시장의 파괴성을 내버려두고 고통을 무조건 인내할리 만무했다. 하물며 경기주기를 일으키고 투기심리를 조장하는 시장의 불안정성이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려는 개방정책 덕분에 사라져버릴 리 없었다. 오히려 OECD에 발을 디뎌놓자마자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자금을 더 빨리 이동시켜가면서 막대한 환차익을 챙기려는 「핫머니」에 놀아날 위험성이 높아졌다.
살리나스시대에 생긴 긴장과 모순은 작년초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낙후한 지아파스주의 농민은 개혁과 개방에 따르는 고통의 분배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결국 무장봉기에 나섰다.
한편 아무런 사전 경고없이 취해진 올초의 평가절하 조치에 화가 난 외국자본이 투자를 회수하면서 40%에 가까운 페소화 폭락사태가 일어났고 구매력에 타격을 받은 할리스코주의 중산층은 2월12일의 지방선거에서 만년야당 국민행동당에 대승을 선사했다.
시장은 창조하면서 파괴하고 파괴하면서 창조한다. 그러나 멕시코는 이를 몰랐다. 시장의 불안정성을 적절히 관리하고 낙오자의 삶을 보살피면서 시장의 창조성에 길을 터주려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부족했다.
국경없는 경제의 세계화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치의 영역이 증발하고 국가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파괴성을 달래면서 창조성을 살리는― 그리하여 낙오자에게서까지 경쟁의 원칙에 대한 동의를 확보하는 책임은 여전히 국가에 있다.
과연 한국의 문민정부는 이에 부응하는 세계화 전략을 제대로 설계하고 있는가, 걱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