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이 평화무드를 조성해 감에 따라 이집트는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범(범)아랍국가의 단결을 촉구하며 평화정착과정에 제동을 걸 기미도 보이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중동지역의 평화중재자로 자임해온 이집트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평화가 이집트의 입지를 축소 시킬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집트의 고민은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개최된 이집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요르단등 중동 4자외무회담에서 잘 나타났다. 이날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므르 무사 이집트외무장관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외무장관은 맹렬히 상대방을 성토했다.
무사 장관은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을 도발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로 중동지역을 석권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특별한 관계」가 아닌 「정상적인」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페레스장관도 지지않고 맞받아 쳤다. 그는 이집트가 평화과정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는 대(대)이스라엘 핵사찰 압력을 위해 아랍국가들을 결집시키기 전에 이란의 핵시설부터 사찰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는 일련의 평화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동지역의 리더십을 획득하기 위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집트는 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아랍국가들을 이스라엘과의 평화에 동참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유대인과 화해한 첫 아랍국가라는 부담과 이에따른 주변국들로 부터의 고립감을 완화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일단 이집트가 길을 닦아놓자 이스라엘은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과 「직거래」를 시작했다. 또한 이스라엘뿐 아니라 요르단도 이집트와 협의없이 양국간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최근 오만 바레인 모로코 튀니지 등 아랍국가들과도 독자적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사태가 이쯤되니 이집트는 심기가 편치않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와 평화관계를 수립할 경우 자신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이스라엘은 기술적으로 주변국들에 줄 것이 많을뿐 아니라 미국과의 교섭력에 있어서도 이집트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경제력은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을 합친 것보다 더 크므로 중동에 공동시장이 형성될 경우 이를 장악하리라는 것은 뻔하다.
불안해진 이집트는 역공에 나서 아랍국가들을 충동질, 이스라엘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도록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핵을 공개하든지 다시 따돌림을 받든지 양자택일 하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집트는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정상회담을 개최, 아랍국가들에게 이스라엘과의 관계정상화를 재고하도록 신호를 보냈다.
이같은 최근의 태도변화는 이집트의 「정체성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당초 이집트는 중동에 평화가 정착되면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더 약화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평화가 진전됨에 따라 이스라엘은 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경제, 외교적 기회를 점차 확대, 이 지역 중심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반면 이집트는 외교적 역할에 의해 평가절상된 과거 입지를 상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아랍 이웃과도 국가 대 국가로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집트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즉 자신이 일조해온 평화정착 과정을 훼방놓아 리더십을 재주장 하든지, 아니면 미국 및 중동국가들 사이에서 과거보다 약화된 자신의 처지를 수용하든지 해야하는 것이다.
이집트는 이제 서구와의 싸움을 통해 중동을 이끌었던 과거 나세르의 모델도,서구와의 가교역할로 한몫을 했던 사다트의 모델도 따를 수가 없다. 이집트는 지금이야말로 새 시대에 걸맞는 새 모델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집트가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잡느냐에 따라 중동의 장래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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