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살림은 적자·지하경제는 흥청… 2중구조 몸살 심화 모스크바는 흑과 백의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는 도시다. 10월부터 겨울이 시작되면 하오 2∼3시부터 어둠이 깔려 도시 전체는 칠흑같이 캄캄해진다. 이같은 날씨는 3∼4월까지 계속되고 하루걸러 내린 눈은 쌓인 채 봄이 올때까지 녹지 않는다. 최근 길가 쇼윈도에 조명이 많이 늘었지만 밝지않은 가로등으로 도시 전체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건물들도 밝은 색조는 거의 없고 오가는 사람들의 외투나 옷색상도 대부분 어두운 계통 일색이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시종 무뚝뚝하고 음울한 표정인데 경제사정이 갈수록 악화돼 이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가끔 맑은 날이라도 있어 해라도 반짝 비치면 순식간에 거리는 명랑해지지만 그것도 잠시뿐, 날씨의 변덕이 너무 심해 좋은 날씨는 별로 없다. 이처럼 황량한 거리와 대부분의 시민들의 모습과는 달리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카지노와 나이트클럽등에 가보면 별천지이다. 최고급 양복을 차려입은 신흥부자들이 물쓰듯 달러를 쓰면서도 아까운 줄 모른다. 최고급 승용차인 벤츠가 가장 많이 팔리는 도시가 바로 모스크바다. 곳곳에 고장난 차가 길을 막으면 차들이 서슴없이 인도로 가는 곳도 모스크바이다.
시민들의 특이한 모습중 하나는 아무리 바빠도 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국기질일 수도 있지만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빨리 접수시켜도 일이 그만큼 신속히 처리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점에서 물건을 빨리 달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슈퍼마켓 등도 마찬가지다. 서구식 서비스를 기대하면 실망만 크다. 시장경제라는 옷은 입었지만 머리는 아직도 공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같다. 지난 70여년간 불편한 줄 알면서도 참아왔더니 이제는 아예 관습이 된 셈이다.
이 때문인지 모든 구조가 이중적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뒷돈을 줬는지 쉽게 허가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내뱉는 푸념이다.
관리들은 물론이고 직장인들은 대개 2가지 직업을 갖고 있다. 아침에 잠시 출근해 사무를 본후 오후가 되면 딴곳으로 가 부업을 한다. 물가에 비해 쥐꼬리만한 월급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어떤 일도 한번에 안되고 뇌물이나 급행료가 즉효약이다. 개인기업 식당등은 제대로 세금내는 곳이 별로 없고 대신 관리들에게 조그만 성의표시를 한다. 마피아들에게 세금보다 비싼 「보호비」까지 내야하니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은 적자투성이지만 지하경제는 갈수록 흥청망청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나라는 곧 망해야 한다. 지난해 석유 가스등 자원을 수출해 무역흑자를 보았지만 외국차관을 도입하지 못하면 재정이 파탄날 정도로 경제사정은 좋지 못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굴러간다.
월 50∼60 달러의 적은 급료를 받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다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전체가 거대한 먹이사슬과 공생체계로 얽혀있는 듯하다. 이때문인지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줄」이라는 말을 한다.
한 러시아친구는 아마 1백년이 지나도 서방에서 생각하는 개혁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에타 로시야, 에타 머스크바」(이것이 러시아, 이것이 모스크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러시아인들의 숫자가 차츰 늘어가고 있다. 이들이 대다수가 될 때는 언제쯤 일지 궁금하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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