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법 등 「보이지 않는손」 동원/형평·예측가능성 혼선 우려도
신재벌정책의 실체가 최종현 전경련회장의 기자회견파문을 계기로 드러났다. 그동안 안개속에 가려있던 신재벌정책의 방향과 정책수단이 새삼 재확인된 것이다.
신재벌정책의 방향은 소유경영분리, 문어발확장억제(업종전문화), 선단식 경영체제 해체 등 과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김영삼대통령은 93년 취임직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재벌의 업종전문화와 소유분산을 강조한데 이어 최근 중소기업인과의 면담에서 선단식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은 공정거래위원장시절에 이미 김 대통령의 이같은 재벌관을 정책화한 장본인이다. 한 수석은 이제 경제정책추진의 최고실무자로서 각 재벌그룹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선경그룹에 대한 공정위조사도 한수석이 최종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재벌정책의 방향은 확실히 잡혀 있지만 방법론, 즉 정책수단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규제완화의 큰 흐름속에서 은행여신관리제도등 재벌에 대한 규제도 같이 완화되는 추세다. 정부로서도 이같은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갖고 있는 가장 확실한 재벌정책수단은 공정거래법이다.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 상호지급보증제한 30대그룹지정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같은 공정거래법상의 수단으로 당장의 재벌문제 현안을 다루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업종전문화 소유경영분리 선단식경영해체등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정부당국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당국이 재벌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세무조사 공정위조사등 소위 재벌사정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기업이 있을까. 재벌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무서워 하지 않는 재벌은 없다. 국세청의 세무조사설만 돌아도 그룹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하는 실정이다. 정부당국은 「보이지 않는 손」을 앞세워 각 재벌그룹들이 정부의 정책방향대로 스스로 따라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거나 저항할 때의 대가는 분명하다. 선경그룹이 시범케이스인 셈이다. 최회장이 정부의 재벌정책을 공개비판하자 공정위가 즉각 부당내부거래조사를 발표했다. 다음에는 세무조사 카드가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재벌정책의 추진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은 많은 약점을 갖고 있다. 정상적인 정책수단이 갖추고 있어야 할 객관성 형평성 예측가능성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재계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손」의 이같은 불규칙바운드 때문이다.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골탕먹이느냐』는 비판이 팽배해 있다.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재벌정책의 실질적인 사령탑으로 알려진 한수석의 성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민정부의 최고의 실세경제관료인 한수석은 공정거래위거래위원장시절 부당내부거래조사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위장계열사 색출작업을 벌여 재계를 긴장시켰다. 또 지난해 경제기획원차관시절에는 총액출자제한축소등 공정거래법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공방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부안을 관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수석은 우리나라의 재벌행태에 대해서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재벌정책 추진은 6공때 「5·8조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6공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 재벌그룹에 대해 비업무용부동산을 매각토록 강제했다가 두고두고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이백만 기자>이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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