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방의원들의 「한국병」/이성춘 논설의원(일요시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방의원들의 「한국병」/이성춘 논설의원(일요시론)

입력
1995.02.19 00:00
0 0

 1950년대 지방의원들은 지방자치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지역발전과 주민복지를 위해 심부름꾼 역을 열심히 했다. 6·25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가난한 가운데 회의때마다 겨우 버스값정도의 교통비만을 지급받았지만 누구도 불평이 없었다. 다만 중앙의 자유·민주 양당간 극한대결구도가 각급지방의회에서도 재연되어 이따금 격돌하는 것이 큰 흠이었으나 그 나름대로 민주화를 위한 투쟁까지 겸했던 것이다. 온 국민의 기대 속에 30년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지방의회가 출범한지 4년이 가까워 온다. 갖가지 시행착오속에서 지역의 숙원사업추진, 각종 민원중계, 농어촌실태조사와 대책의 강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치단체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행정추진에 제동을 걸고 관의 살림을 감독한 것은 큰성과로 꼽을 만하다.

 하지만 주민들로서는 풀뿌리민주주의의 횡포와 폐해를 톡톡이 맛봐야 했다. 의사당을 마련하고 운영비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주민과 가장 가까운 심부름꾼이라는 의원들이 땀흘려 낸 세금을 멋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들은 광역·기초의원 5천1백68명의 외유비용까지 대야만 한 것. 처음에는 선진지방의회견학, 현지전문가의 특강 및 그들과의 세미나등을 명목으로 내걸었지만 견학·시찰은 형식적인 얘기로서 거의가 관광과 유람으로 일관했고 이제 외유는 재정이 가난한 시·군·구의회까지 연례행사가 됐다.

 매해 여름과 겨울·봄 워싱턴·뉴욕·LA·런던·파리·로마·시드니·도쿄등은 한국의 지방의원들로 북적거려 현지의 관광수입을 높여주고 있다. 그뿐인가. 얼마전 유럽의 어느 공관장으로부터 2∼3년간 각 지방의회의 부탁으로 주재국 지방의회에 요청, 시찰·토론자리를 마련했으나 상당수가 의사당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거나 관광하느라 아예 오지도 않아 숱한 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방의원들의 한심한 외유열병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인천직할시 및 각구의회의원들의경우 그동안 쓴 외유비는 12억2천1백만원으로 젖먹이를 포함한 2백12만 인천시민 1인에 5백75원씩 부담한 셈이다. 특히 인천북구의원들은 93년이래 5차례 외유로 각구중 가장 많은 3억2천7백만원을 썼다고 한다. 북구청의 일부 공무원들이 세금도둑질을 하는동안 감독책임을 맡은 의원들은 세금으로 외유를 즐긴 것이다.

 지난 수년간 지방의원들의 외유비용으로 막대한 돈이 소요됐는데 그 결과 얼마나 열심히 외국의회방청·견학·토론·연수등을 하여 내실있는 보고서를 주민들에게 배포했고 또 그로 인해 의회운영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물론 그중에는 열심히 관찰하고 온 의원들도 있으나 대다수가 유람으로 일관했음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새해 들어 상당수 의원들의 작태는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임기가 불과 4개월밖에 안남았는데 광주시·전북도·부천시의원들이 올해 1년치 의정활동비를 몽땅 인출했다가 빗발치는 여론에 눌려 50%를 반납하고 여기 저기의 의원들이 주민들의 가뭄고통에 아랑곳없이 자신들이 멋대로 책정한 예산으로 줄지어 외유에 나서고 있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다.

 일부의원들이 5대의원들부터는 월정액을 받기 때문에 예산에 계상된 활동비·외유비는 우리 몫이라고 하는 주장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보다 월등 잘 사는 구미 선진국의 지방의회가 해마다 외유비를 책정했다는 얘기는 귀를 씻고도 들을 수 없다.

 이제 의원들쪽에다 자제를 호소해봐야 소용이 없다. 지방자치의 주인으로서 국민들이 나서 의회를 감시해야 한다. 지방의회만 구성하면 자치가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회의때 방청석이 텅비는 무관심은 의원들이 멋대로 예산을 주무르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고 도 할 수 있다. 몇몇지역의 YMCA등처럼 각종 시민단체가 지방의회감시에 나서야 하며 특히 시도교육위는 초·중·고생들의 민주주의교육을 위해서도 2∼3개월에 1회씩 지방의회를 방청시키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오는 6월 4대지방선거에서는 불필요한 외유나 하고 예산을 멋대로 쓰려는 사람들은 의사당에 못들어오게 하고 진짜 심부름꾼을 뽑아야 한다. 국민을 무시하는 지방의원들의 「한국병」은 국민이 고쳐야 한다. 지방의회의 개혁은 국민만이 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