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다섯명이 하는 경기다. 그러나 후보선수없이 다섯명만 뛰는 농구팀은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세계경제전쟁의 주역이라고 하는 우리 재벌은 후보없이 다섯명만 뛰는 농구팀과 같다.○후보없는 농구팀
30대 재벌의 규모를 따져보면 그렇다. 지난해 30대재벌의 총자산중 상위 5대재벌의 자산은 1백10조5천7백90억원으로 나머지 25대재벌의 총자산 88조5천9백80억원보다 월등히 많았다. 자산규모 1위 재벌의 자산은 31조6천6백90억원으로 30위 재벌의 자산 1조5천6백30억원의 무려 20배나 됐다. 매출액을 따지면 더 한심한 결과가 나온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난 93년도 매출액은 8조1천억원으로 하위 8개그룹의 연간 매출을 합한 것과 비슷한 규모였으며 매출액기준 제6위인 재벌의 전계열사가 한해동안 올린 매출액보다 1천억원정도 많은 액수였다. 지난해는 삼성전자의 주력상품인 반도체경기가 사상유례없이 좋았으니 격차가 더 심해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다같은 재벌이라 해도 하위재벌은 재벌이 아닌 셈이다. 상위재벌들이 백화점이라면 하위재벌들은 구멍가게 수준인 것이다. 앞으로도 재벌간의 격차는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데는 이미 우수한 두뇌와 막강한 자본력을 구축해둔 상위재벌들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상위재벌들은 자동차 전자 제철소 정유소 항공 금융 심지어는 종합병원등 실속있고 보기좋은 새로운 영역으로 무한정 업종을 넓혀가고 있으나 하위재벌들은 편의점이나 외식사업과 같은 업종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상위재벌이 눈독을 들이지 않아야만 차지할 수 있는 실정이다. 하위재벌들은 큰 맹수가 잡은 짐승을 다 먹고 얼른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물과도 같은 것이다. 권투로 따진다면 40㎏짜리 국민학생과 헤비급선수의 시합과도 같다.
○중기업종 밀려나
문제는 상위재벌들이 더 확실한 기회를 움켜쥐는 동안 하위재벌들은 중소기업들이 해야 마땅할 업종으로 밀려나고 이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재벌정책이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재벌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는데도 모든 재벌을 같은 기준으로 싸잡아 규제하고 관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4월부터 시행되는 30대재벌에 대한 출자제한조치를 들어 보자. 재벌의 무분별한 영역확장을 막기 위해 현재 40%인 출자제한을 25%로 축소하기 위한 이 조치는 30대 재벌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같은 수준으로 출자제한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하위재벌들은 자본금이 많이 필요한 업종에는 지금보다도 참여가 더 어렵게 된다. 상위재벌들도 제한이야 받겠지만 덩치가 큰 탓에 하위재벌들이 당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무차별정책 문제
상위 재벌은 점점 더 커지고 하위재벌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게 돼있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경제가 변변한 팀을 만들어 세계의 내로라하는 거대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후보선수 없이 다섯명만으로 구성된 농구팀은 절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 우리경제의 저변을 확대하고 기량을 갖춘 후보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하위재벌을 키워야 한다. 재벌정책을 더 세련되고 세분해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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