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 텃밭 일구듯 사랑의 씨앗을 뿌릴터…”/18세때 신춘문예 입선/소설론 32년만의 해후/활화산 같은 열정으로/독자와 먼길 동반여행 이상하게도 한국일보와 소설로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63년도 고등학교 2학년때 신춘문예에 입선하였을 때 당시 장기영 사주는 교복을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나에게 상금 3천3백30원을 주면서 몹시 난감해 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1974년 「맨발의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30여개국을 돌아다녔던 기행기를 반년간 연재했던 것으로 이어진다. 그뿐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씩 고정칼럼도 썼었는데 어느 날 「청년문화선언」이라는 칼럼을 썼다가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그동안 몇번의 연재소설 청탁을 받기도 했었지만 이상하게도 연이 닿지 않았었는데 이번에야 처음으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열여덟살, 청년때의 인연으로 따져본다면 소설로서는 거의 30여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느낌이다. 꽃피는 초봄에 만났다가 낙엽이 지는 만추의 계절에야 다시 만나는 셈이어서 세월의 무상함까지 느끼게 한다.
신문에 현대소설을 쓰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그동안 「잃어버린 왕국」이나 「왕도의 비밀」과 같은 역사소설이나 「길없는 길」과 같은 불교소설에 매어달려 왔었다. 그렇게 보면 현대소설은 「겨울나그네」이후 10여년만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연재소설을 쓰기는 수십편이 훨씬 넘어 이제는 도가 트일만도 하지만 매번 시작할 때마다 긴장하고 근심스러워 초주검이 되어 버린다. 젊었을 때는 조미료처럼 자주 사용하던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준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나는 화전민처럼 이 메마른 시대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타버린 텃밭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싶다.
제목을 「사랑의 기쁨」으로 한 것은 오랜 고민끝이었다. 더 세련된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단순한 제목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이 노래의 첫 마디 가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노래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듯이 나는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사랑의 기쁨」의 노래가 소설을 읽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함께 불리워지기를 소망한다.
열여덟살의 나이로 중국집처럼 컴컴한 한국일보 편집실에 목조계단을 뛰어 오르던 그 첫 사랑, 그 젊은 날의 열정이 이제 다시 활화산처럼 타올라 주기를 소망한다. 연재소설은 매일매일 독자와 함께 미지의 세계로 함께 떠나는 동반여행이다. 독자여, 길이 끝나는 그곳까지 나와 함께 동무가 되어 먼 여행을 함께 떠납시다.
□작가연보
▲45년 서울 출생
▲63년 고2때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67년 단편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72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타인의 방」 「처세술개론」으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바보들의 행진」 일간스포츠 연재, 「별들의 고향」 집필
▲74년 「바보들의 행진」 「맨발의 세계일주」 간행
▲77년 「도시의 사냥꾼」 「개미의 탑」 간행
▲79년 「돌의 초상」 「사랑의 조건」 「천국의 계단」 간행
▲80년 「지구인」 「불새」 간행
▲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적도의 꽃」 「위대한 유산」 간행
▲85년 「겨울나그네」 간행
▲86년 「잃어버린 왕국」 간행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대종상 각본상 수상
▲87년 천주교에 귀의
▲89년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간행
▲91년 「구멍」 간행
▲92년 「가족」 1∼4권 간행, 시나리오선집 3권 간행
▲93년 「길 없는 길」 전4권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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