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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따뜻한 빵」/김인환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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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따뜻한 빵」/김인환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시평)

입력
199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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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떠남이 빚은 상사성의 상실 나에 대해 말하기를 그친 바로 그때부터 이승훈의 시는 속도와 유머를 획득하였다. 단순한 비유들을 반복함으로써 모호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승훈의 방법이다. 그의 시어에 등장하는 그대는 대체로 넉넉한 가슴으로 그를 받아주고 그를 향해 따스하게 더워질 줄 아는 여자이다. 그러나 이승훈의 그대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현대문학」 2월호에 실린 「따뜻한 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말라르메는 중학교 영어교사를 했다지만 「이것은 나무다」라는 문장 속에는 누구도 이루 다 헤아릴 길 없는 의미가 깃들어 있고 시를 짓는 일은 이러한 오래된 습관에 근거하여 사물들을 정돈하는 행동이다. 「따뜻한 빵」에서 이승훈은 빵과 겨울, 호수와 길, 의자와 도시, 침대와 유리창, 살구나무와 벨트를 대응시켰다. 어째서 벨트가 살구나무란 말이오, 라고 묻는다면 이승훈은 아마 내적 관계를 즉흥적으로 구성한 결과라고 대답할 것이다. 과거의 어느 장소에 사물들을 그러한 방식으로 정돈할 수 있게 한 것은 다름아닌 그대의 현존이었다. 그것은 그대와 함께 떠난 겨울이었고 그대와 함께 달리던 길이었고 그대와 함께 들른 도시였고 그대와 함께 머무른 집이었고 그대가 지닌 벨트였다. 그대가 풍경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이었다.

 그대 앞에서 나는 겨울을 찬 얼음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대의 시선에 굴복한 나에게는 추운 겨울과 따뜻한 빵이 오히려 더 적절한 상사체로 지각된다. 그러나 거리가 먼 상관물들을 나란히 놓일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대가 이제는 다시 찾을 길 없는 과거 속으로 느릿느릿 물러나고 있다는 나의 절망이 아닐까?

 <우리가 머물렀던 시간은 3천년이었네>

 이 여섯째 2행련도 과거시제로 표현되어 있으나 3천년쯤 되는 과거는 영원과 유사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대는 이제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영원히 현존하는 추억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대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이 곳에는 그대가 없으므로 나도 있을 수 없다.

 「추운 겨울 저녁/우울병에 시달리는 남자 하나」가 지상의 모든 것이 망가지고 남은 잔해 사이에 누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에 의하여 드러나는 사물들의 어떤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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