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 효자」 놔두자니 가격구조왜곡 걱정 「가격파괴가 먼저인가, 공정경쟁이 먼저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두가지 명분사이에서 고민에 빠져 있다.
가격파괴는 「값올리기」에 앞장서 온 국내 유통업계에 지난해말부터 불어닥친 신선한 「값내리기」물결. 물가안정의 묘책찾기에 고심해 온 정부로선 「인플레주범」으로 낙인찍혀온 유통업계가 모처럼 안겨준 고마운 「선물」이었고 그래서 가격파괴확산을 위해 제도적 지원책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가격파괴바람이 전 유통업계에 일파만파 번져가면서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이 나타났다. 눈가리고 아옹식으로 무조건 싸게 팔고 보자는 불공정·반경쟁적 독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공정위는 고민에 빠졌다. 직무상 불공정한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지만 자칫 「공정거래」만을 강조하다간 물가안정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가격파괴열기에 찬물을 끼얹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발단은 백화점 바겐세일로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노마진판매」란 이름을 붙인 바겐세일로 재미를 봤다. 다른 백화점들도 가격인하판매에 나섰다. 백화점들의 가격인하경쟁은 이전투구 양상으로 비화됐다. 공정위는 즉각 내사에 나섰고 『재고품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됐지만 노마진이란 표현 자체는 큰 무리가 없다』는 절충적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가격파괴에 말끔한 결론은 못내렸지만 문제의식은 갖게 되었다. 정재호 경쟁국장은 『가격파괴엔 생산성향상 유통구조개선등 비용인하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격파괴를 빙자한 품질파괴 질서파괴는 오히려 물가를 왜곡할 뿐』이라고 밝혔다.
사실 정부내에서도 공정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론과 물가안정을 위해선 가격파괴물결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현실론이 맞서 있었다.
고심하던 공정위는 그러나 현재 가격파괴 자체보다는 공정경쟁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금명간 가격구조전반에 대한 정밀분석에 착수키로 하고 백화점들이 가격파괴를 앞세워 거래업체에 헐값납품을 강요하는 「우월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대해선 일벌백계할 계획이다.
무분별하게 확산일로를 타던 업계의 가격파괴는 앞으로 「공정한」이란 단서를 꼭 붙여야 하게 됐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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