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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재회(장명수 칼럼: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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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재회(장명수 칼럼:1780)

입력
1995.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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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젊은이들이 「슬픔이여 안녕」이나 「어떤 미소」를 읽는다면 어떤 독후감을 내놓을지 궁금하지만, 1950년대·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가 새 소설을 내놓을 때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소설들을 영화로 만들면 그의 팬들이 다시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치곤 했다. 1954년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사강은 마르고 작은 몸매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총명한 얼굴을 가진 19세의 소르본대학생이었다. 그 소설은 그가 18세에 쓴 것이었다. 그후 그는 「어떤 미소」 「달이가고 해가가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등을 해마다 히트시켰고, 스포츠카를 과속으로 몰다가 끔찍한 사고를 일으켰고, 나이트 클럽을 돌며 자주 과음했고, 23세 연상의 출판사 사장과 결혼했다가 18개월만에 이혼했고, 멋진 고성을 별장으로 소유했다. 그 모든 일들이 데뷔 몇년안에, 스무몇살에 일어났다.

  그는 데뷔작으로 프랑스 문학비평대상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엇갈렸다. 그의 소설들은 간결하고 모호하며 냉소적이고 때로는 잔혹했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내가 사강에게 끌리는 것은 그의 악에 대한 관점, 악에 대한 지식, 악에 대한 증언이다』라고 말했으며, 어떤 비평가는 그를 「빼빼마른 독초같은 작가」라고 불렀다. 『20세이전에 얻은 벼락명성을 유지한다는 것이야말로 문학사적인 사건이며 신화다. 사강은 그 신화 때문에 과대평가되기도 하고, 과소평가되기도 한다』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를 인터뷰했는데, 거침없고 솔직한 그의 답변은 늘 요란한 반응을 불렀다. 20년동안의 각종 인터뷰를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었던 편집자는 『그의 답변은 명확하다는 것 이외에는 스캔들이 될 이유가 없고, 정직성 이외에는 도발적 요소가 없다』고 변호하고 있다.

 그는 빛나는 20대를 지나 30대·40대에도 화제작들을 발표했으나, 그후 거의 잊혀진 생을 살았다. 그리고 며칠전 마약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게된 59세의 사강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자신을 파멸시킬 권리를 갖고 있다. 지금 가성소다 한잔을 들이켜고 싶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문제다』라고 항변했다. 올드팬들은 오랜만에 너무도 사강다운, 20대의 사강다운 독설을 들었다.

 19세에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던 신화의 주인공은 이제 「자신을 파멸시킬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짧은 성공과 긴 침묵을 견뎌온 그의 말은 여전히 명쾌하지만, 세월의 그림자가 없다. 긴 세월이 흐른후 다시 만난 작가와 독자가 향수를 나눌 수 있는 부드러운 공간이 없다. 젊은날 추억을 남겼던 한 작가와의 삭막한 재회가 올드팬들을 쓸쓸하게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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