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가게에서 산 커피가 쏟아지면서 가벼운 화상을 입은 할머니가 소송을 제기한다. 세계 최대의 햄버거 체인을 거느리고 있는 이 회사는 커피 한잔 잘못 판 죄로 수십억원을 고스란히 문다. 이 회사는 얼마 뒤 또다시 수십억원짜리 소송에 걸려든다. 가게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손님이 바닥의 물기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송사의 나라 미국은 소송으로 날이 지샌다. 조금이라도 미심쩍다 싶으면 일단 법에 걸고 본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제 권리를 찾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비온 논에 송사리 꾀듯 변호사들이 몰려 든다. 사고 피해자를 부추겨 소송을 하게 하는, 이른바 「앰뷸런스 체이서」들이 도처에 득시글댄다. 미국이 망해가는 징조라는 개탄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법체계는 돈이 많이 들게 돼 있는데다 그에 따라 파생되는 사회적 비용이 상식선을 크게 넘어서 있다. 그러나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법률구조는 배울게 많다. 퓨니티브 대미지(PUNITIVE DAMAGE)도 그중 하나다.
우리말로 「징벌적 배상」을 뜻하는 이 용어는 가해자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피해를 예방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또 선의의 피해자에게는 철저한 배상을 해줌으로써 인명보호를 최우선케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사고를 당하고도 억울하게 가슴만 치는 일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고책임의 귀속처가 불분명해 보이는 경우라도 모두 가려내 책임을 묻는다. 간접적이나마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하게 한다.
당한 사람은 억장이 무너지고, 책임을 물을 데는 없고,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배상금이 「수습위」니 「대책위」사이를 떠돌고, 그 배상금을 둘러싸고 비인간적인 흥정이 오가는 살풍경·진풍경·괴풍경은 적어도 미국에선 없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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