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논 집착 일방통행에 암초/향후 정국운영 재검토 불가피 9일 실시된 민자당의 원내총무 경선이 우스운 모양으로 끝났다. 김영삼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후보중 한 명이 「알아서」 사퇴함으로써 사실상 「임명」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영구 의원은 이런 저런 사퇴배경을 설명했지만 이를 순수하게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특히 총무경선은 여권핵심부가 당개혁의 상징처럼 강조해온 대목인만큼 배경이 어떻든 김대통령의 시나리오는 출발부터 모양사나운 꼴을 면치 못하게 됐다. 더구나 당직개편에서 당초 교육연수원장에 임명됐던 남재두 의원이 전례없이 사의를 표명, 뒤늦게 사람을 바꾸는 촌극을 벌인바 있어 이날 총무경선의 무산은 여권핵심부의 당관리방식과 인식에 상당한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세대교체의 명분을 앞세운 이춘구대표―김덕룡 사무총장 카드의 안착 여부가 아직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태에서 해프닝처럼 일어난 2개의 사안을 간단하게만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물론 당직반려와 후보사퇴의 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해못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JP신당의 파장이나 특정계보의 역학관계상 불가피했던 측면등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같은 구구한 사연이 아니라 이른바 「예견될수 있는」상황을 간과해버리는 여권의 현실인식이다. 세계화라든지 정당체질의 환골탈태라든지 등의 슬로건이 정당하고 「도덕적」이면 나머지는 으레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총무경선의 무산이 던지는 정치적 함의와 파장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말해 당지도체제의 인적틀을 파격적으로 짜면서 당내민주화의 제도적 틀로 뒷받침하려고 했던 여권핵심부의 구상이 첫단계부터 차질을 빚은 이상 여권이 향후 정국스케줄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 당내 관측통들은 『JP퇴진움직임이 본격화된 지난 연말부터 당직개편이 단행된 최근까지 40여일을 되돌아보면 파행과 돌출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당명 변경 소동은 그 대표적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또 『여권핵심부의 「따라오면 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당직반려, 후보사퇴등의 파동이 재연될 소지는 상존한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지자제선거를 전후해 벌어질 정국소용돌이를 심각하게 고려해 대응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야 할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권핵심부가 최근에 드러난 일련의 상황을 얼마나 뼈아프게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명분과 목표만 옳으면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자신감 넘친」얘기들이 여권 고위관계자사이에 교과서처럼 운위되고 있기 때문이다.<이유식 기자>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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