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끝내고집땐 파기불가피” 강경론 부상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에 대한 수용거부 의사를 거듭 밝힘에 따라 북·미 제네바합의 이행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북·미합의의 핵심사항인 경수로 공급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최근 2차례의 전문가회의에서 한국형 수용불가 입장을 보다 명백히 했다. 워싱턴의 많은 외교분석가들은 이 때문에 제네바합의가 현재 커다란 암초에 부딪쳐 있다는 상황인식에 동의하고 있다. 40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건설 재원중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북한중 어느 한 쪽이 먼저 양보하지 않는한 제네바합의는 이행 자체가 불가능해 지게 될 상황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북한과 한·미 양측 모두 마지노선의 팽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합의이행 전망을 한층 어둡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당초 북·미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는 전제하에서 오는 4월말 연락사무소가 상호개설될 것이란 전망이 가능했으나 경수로 공급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등 미정부 고위관리들도 『한국형 경수로 제공은 북·미합의 이행을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며『북한이 한국형을 끝내 거부할 경우 제네바합의는 사실상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9일 하원청문회에 나와 『북·미합의 이행이 실패할 경우 미행정부와 의회는 작년여름 대북 강경기류 속에서 계획했던 주한미군전력의 증강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정부 관리들의 발언수위가 서서히 높아지는 것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북한에 합의이행을 촉구하는 일종의 압력공세인 셈이다. 앞으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엿보이지 않는한 이른바 「채찍론」으로 표현되는 미국 조야의 매파논리가 또 다시 고개를 들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북·미합의 이행이 암초에 부딪친 현실은 당초의 제네바 합의자체가 그만큼 불안정하고 엉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북핵협상대표인 갈루치 차관보를 비롯한 미정부 관리들은 그동안 『북한측에 한국형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제네바합의문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했던 만큼 북·미합의 당시부터 한국형 수용여부는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형 도입으로 인한 체제동요등 내부적 불안을 우려하는 북한측 입장에서는 한국형으로의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며 때문에 북·미간 협상은 끝내 절충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정부가 「현물부담 원칙」을 고수하며 한국형이 선택되지 않을 경우 일체의 재정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북·미간 경수로협상은 이래저래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다음달 재개되는 3차 경수로협상과 막후대화를 통해 대북설득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4월21일이란 날짜가 최종시한은 아니다』고 부연하는 국무부측 논평에서 엿보이듯 미국은 북한과의 경수로 협상에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같다.<워싱턴=정진석 특파원>워싱턴=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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