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해체 어렵지만 국민기업화 목표”/「고강도」 신재벌정책 가시화… 재계 긴장 정부가 재벌의 소유집중, 문어발경영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말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독트린」발표이후 대대적 자기수술을 단행한 정부는 이제 재벌에 대해 강도높은 화답을 요구하고 있다. 어차피 세계화의 쌍두마차는 정부와 기업인데 한쪽(정부)이 바뀌었으니 다른 한쪽(기업)도 낡은 틀을 벗고 「세계화형 골격」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현정부 출범초 거센 사정바람이 지난후 재계는 정부의 대 재벌정책이 유화적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공정거래법을 개정, 25%의 출자총액한도제를 도입했고 최근 시행령에서 「소유분산 없이는 출자한도 예외도 없다」는 원칙을 재천명, 재벌의 소유집중과 문어발경영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9일 열린 청와대 신경제회의에서 마침내 김대통령은 『대기업은 선단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입지를 좁히지 말라』며 재벌의 소유 및 경영행태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재벌의 소유집중, 문어발 경영에 대한 확고한 거부의사이자 이제 지난 2년과는 확실히 다른 「신재벌정책」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사실 그동안 정부의 대재벌정책은 경제력 집중완화와 업종전문화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전개되어 왔다. 때론 재벌을 강도높게 「배제」하는듯했고 때론 「보호」하는듯했다. 그러나 업종전문화원칙은 진입퇴출의 자유논리와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고 결국 삼성의 승용차진출, 현대의 제철소추진등으로 이미 명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정부가 재벌에 요구하는 새 골격짜기, 즉 세계화시대의 신재벌정책은 소유분산을 통한 경제력집중완화로 「집중」되고 있다. 국민적 부가가치가 몇몇 기업, 몇몇 오너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세계화의 정서상 용납할 수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정부의 생각은 소유분산, 즉 오너지분율을 획기적으로 낮춰 재벌을 「사기업이되 개인기업은 아닌」형태로 끌고가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어발경영의 부산물인 비주력계열사는 매각을 유도, 군살을 떼어내고 꼭 필요한 근육만 남기도록 재벌의 체중줄이기를 권할 방침이다.
물론 이같은 방침은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 표세진 공정거래위원장등 현 경제팀멤버간의 공감대에 기초한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재벌의 인위적 해체란 불가능하지만 대주주는 존재하되 결국 국민기업화하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말 삼성그룹의 계열사 분리매각발표을 필두로 현대가 뒤따랐고 현재 대우 LG도 모든 조직개편준비를 마치고 발표택일만 남겨놓고 있다. 내로라 하는 재벌들이, 그것도 일시에 조직축소·개편을 단행한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신재벌정책의 강성기류에 대한 화답이다. 추세상 이 재벌조직개편바람은 재계를 당분간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하지만 이 조직개편수위가 정부를 만족시킬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자잘한 계열사를 떼어내어도 신재벌정책의 요체인 소유분산의 달성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날 직접 언급한 「선단식 경영」은 문어발경영의 상징, 즉 오너의 「계열사관제탑」이라 할 수 있는 기획조정실 축소·해체문제와 맞물려 있어 향후 정부의 대재벌정책 강도에 따라 제2, 제3의 조직개편도 예상되고 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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