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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부인 라이사 여사(한국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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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부인 라이사 여사(한국 인터뷰)

입력
1995.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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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작은것 졌지만 큰것 승리”/반개혁세력 공세에 많은 고통/한국엔 올때마다 가능성 발견/용기·신념으로 전체주의 종식 기여/세련된 모습·재치있는 화술여전… 「미완개혁」에 집념도□대담=장명수 편집위원

 환경보호운동 단체인 「그린 크로스」총재자격으로 5일 서울에 온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의 아내 라이사여사는 세련된 모습과 재치있는 화술로 가는 곳마다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을때, 서방세계는 공산국가들의 오랜 관습을 깨고 대중앞에 나타난 퍼스트레이디의 활기찬 모습에 놀랐는데, 91년 남편이 실각한 후에도 라이사의 매력은 시들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 대학 철학교수였던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곧장 핵심에 접근하는 답변으로 구소련 인텔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의 붕괴는 일시적인 것이며,나는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과 남편은 지금도 사회주의자인가.

 『구소련에서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전체주의만 존재했다는 것이 남편과 나의 생각이다. 사회주의는 많은 이념들을 담고 있는데, 인류의 행복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사회주의의 좋은 요소들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련에서 실패한 것은 사회주의 그 자체가 아니고, 방향이 빗나간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였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종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국내에서는 실각했다. 무엇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주장했을뿐 실천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러시아인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르바초프가 나라밖에서만 인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정부는 지난 3년동안 남편에 대한 악선전을 계속해 왔고, TV와 신문은 편파적인 기사만을 다루고 있다. 남편의 TV출연은 금지되었고, 계획적인 정보차단이 자행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할때 온국민은 열정적으로 남편을 지지했다. 나는 그와 함께 전국을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수십만 군중이 뜨거운 격려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됐다. 개혁을 원하지 않는 기득권층의 반대, 다른 정치세력들과의 갈등·인종문제·경제위기와 싸워야 했다. 그를 실각시킨 중요한 요인은 정치세력들과의 갈등과 경제문제였는데,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남편은 90년3월 소련연방 초대대통령에 취임했고, 91년12월 연방이 해체됐는데,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국민이 피부로 느낄만한 경제재건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주 크고 중요한 것에서 승리했다. 그는 전체주의를 청산했고, 의회정치와 각연방의 대통령선거를 시행했고,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를 도입했고, 어떤 분쟁에도 반대했다. 옐친은 신속한 국가개혁과 경제재건을 공약하여 인기를 모았으나, 그것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의 공약들은 빈말로 끝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옐친이 잘하고 있는 일과 잘못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나의 남편이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남편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인가.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매우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인간적인 면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다. 선이 삶을 지배하기보다 악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고, 선이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선과 악은 뚜렷하게 대비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별하기 힘든 때가 있다. 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남편이 9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를 원하는가.

 『요즘 우리 부부는 전국을 자주 순회하고 있는데, 얼마전 한 지방도시의 대학에서 남편이 강연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자 한 학생이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남편이 「여러분은 내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합니까.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반정도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는 생각을 하고 있군요.나 또한 생각해봐야겠습니다」라고 남편은 말했다. 남편은 세계와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국민이 그를 원한다면 그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완성못한 개혁을 계속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신은 70년에 걸친 소련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는 격변기를 살았다. 당신은 자신과 남편의 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우리는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나는 시기에 살았으나, 우리의 생은 보람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변혁기를 그냥 살지 않았다. 남편은 변혁을 주도했으며, 소련과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그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순간에 나는 그의 곁에 있었던 증인이며, 적극적인 참여자였다. 나는 그 운명을 자랑스럽게,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주의는 여성에게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여 여성지위를 향상시켰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여성에게 일과 가정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있다.소련은 어떤 경우였는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므로 여성이 일과 가정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이 가정이외의 일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사회의 공통현상이며, 시대적인 요구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위해 비교적 많은 지원을 해왔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소련 여성들이 특히 힘들었던 점은 탁아소등 자녀양육 체계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부족하고, 식당·이발소등 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 못하여 그 모든 부담이 여성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주부가 남편과 아이들의 이발까지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식당에서 외식을 하며 주부의 일손을 덜기도 어려웠다. 나도 역시 가정주부와 대학교수라는 이중의 역할을 하기 위해 늘 바쁘게 뛰어야 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인가.

 『그는 나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많이 주는 편이다. 우리가 결혼할 때는 결혼선물로 반지를 주고 받는 풍습이 없었으나, 남편은 그후 나에게 반지 귀고리 브로치등 액세서리들을 가끔 선물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액세서리들도 모두 그가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은 그가 항상 내곁에 있어준다는 것이다』 

 ▲아내가 보는 고르바초프의 매력은 무엇인가.

 『젊은 시절 그를 만났을때 느꼈던 매력이 오랜 결혼생활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 그는 정말 매력있는 남성이다(웃음). 그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와 사물에 대해 항상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정해야할 순간에 결정하고,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갖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할때도 그는 능력과 용기를 발휘했다. 나는 그런 그를 좋아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다가 체제의 변화를 겪고있는 구 공산권의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의 뿌리가 뽑힌것 같다』는 갈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이념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서 삶의 원칙과 정신적인 위안을 얻고 있다. 사회주의도 오랜 세월 그런 역할을 해왔다. 사회주의속에는 인류를 보다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이념들이 들어 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사회주의 하나만이 허용되고, 그것만이 정의이며, 그것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폐쇄되고 고립된 사회에서 살았다. 어느날 꼭꼭 잠겼던 문이 열렸을 때, 그들은 다른 세계를 보았고, 그동안 잘못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물질적으로 풍요한 다른 세계앞에서 갈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어떤 이념이나 종교도 고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시대다. 사회주의·자본주의·자유주의등 그동안 인류가 경험한 모든 이념들의 장단점을 존중하면서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인류의 공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사회주의에서 얻을 교훈이 있다면, 그 교훈과 장점을 살려야 한다. 구 공산권 국가들은 경제적인 위기뿐 아니라 정신적 위기가 심각한 데, 국민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뿌리를 잃지않게 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세번째 방문했는데, 어떤 인상을 받고 있는가.

 『92년 제주도에서 노태우대통령과 두나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왔을 때 제주도는 천국처럼 아름다웠다. 93년과 이번 방문에서는 활기찬 도시, 근면하고 친절한 사람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올때마다 더 큰 가능성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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