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정서 제대로 전달돼야/해당 외국어 사용 작가와 공역바람직/내·외국학생 대상 전문훈련도 필요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서정주의 시 「신부」에서 설화 속의 신부와 뗄 수 없이 쓰인 시어 「저고리」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영어의 블라우스나 스페인 옷 볼레로가 수줍음에 떨면서도 초야를 가없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어여쁜 신부의 모습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있을까.
「현대시학」 2월호는 기획특집으로 우리 시의 번역과 현지 수용 실태를 점검하는 좌담을 실었다. 영미 독일 프랑스 스페인·중남미문학 전공자들로 우리 시를 수차례 번역, 소개했던 김종길(고려대) 김광규(한양대) 김화영(고려대) 민용태(고려대)교수가 시의 번역·출판현황과 현지 수용,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종길교수는 우리 시가 해외에 소개되는 기점을 1960년으로 잡았다. 그 해 향가 고려가요 시조 현대시를 모은 「새벽의 목소리」가 피터 현의 번역으로 런던에서 출판됐다. 이후 60·70년대 미국 아이오와, 캘리포니아, 하와이대학등서 「한국의 사화집」 「한국 현대시」등의 이름으로 우리 시가를 소개했고 80년부터는 문예진흥원 지원으로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구상 고은등의 작품과 시선집들이 미국 스페인 프랑스 영국 독일 브라질등지로 번역돼 나갔다.
시 번역은 지난한 작업이다. 글자를 옮겨 적기만 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운율의 문제가 있고 우리 생활과 정서가 녹아들어가 있는, 그래서 엉터리로 옮겨서는 시도 무엇도 되지 않는 보석같은 시어 때문에 소설보다 훨씬 번역하기가 힘들다. 서정주의 「소쩍새」가 독일어로 번역될 때 전혀 다른 정서를 가지는 「뻐꾸기」로, 「화사집」에 실린 「서풍부」가 「서풍의 선물(GIFT OF THE WEST WIND)」로 잘못 옮겨진 예들이 지적됐다. 또 시선집의 경우 대표작을 고르기보다 번역이 쉬운 작품에 치중함으로써 시인 소개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화영교수는 『한국소설은 원작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은 번역을 따지기보다 절실하지만 시의 수준은 세계문학 속에서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고 평가하고 외국의 시독자층이 우리보다 훨씬 얇은 점을 또 다른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시를 번역할 때는 그 언어로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과 공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과 역자와 운문담당자가 장기간 작업을 통해 제대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지난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주최한 「해외한국학자및 번역가초청 국제세미나」에서도 『많은 상금을 내건다고 번역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학생들을 번역자로 훈련시키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충고도 있었다.
판매망 넓은 외국 대형출판사를 만나는 것, 이름있는 문예지에 작품이 실릴 기회를 찾는 것, 낭독회등에서 입체적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우리 시가 지역문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취할 방편으로 강조됐다. 좌담자들은 『노벨상 정책이 없다거나 정부교섭이 없다는 우스운 이야기보다는 한국문학 전반이 제대로 소개돼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때 개별 작가들의 노벨상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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