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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춘익단편 「치통」/최원식 인하대교수·문학평론가(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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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춘익단편 「치통」/최원식 인하대교수·문학평론가(소설평)

입력
1995.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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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시대 헌신적 모정의 초상 쏟아져 나오는 게 소설인데 정작 좋은 작품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우니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출판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문학도 상품이라고 외치며 자본의 질서에 기꺼이 투항하는 작가들이 만연하는 현실이다. 장편의 상품화가 진전되면서 단편도 함께 몰락하였다. 출판시장이 영세했던 지난 시대의 작가들은 단편에 자신의 문학적 생명을 걺으로써 단편문학은 우리 소설의 예술적 품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단편다운 단편을 만들어내는 각고의 예술적 노력을 경시하는 소설가들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생력이 부족한 추상화가와 같은 꼴이니까.

 이 점에서 최근 우리 단편문학의 부진은 소설문학 전체의 위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나는 우리 작가들이 모국어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드높게 다시금 다짐하기를 기대한다. 하나의 말을 찾아 병적인 고투를 벌였던 플로베르처럼은 아니라도 「에」와 「에게」를 문법에 맞게 사용하고 「이」와 「이빨」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성의가 아쉽다.

 2월호 문예지에도 이러한 단편의 빈곤 속에서도 손춘익의 「치통」(문학사상)을 발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방화시대를 운운하면서도 정작 서울집중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드물게도 지방에서 활동하는 그는 그렇다고 답답한 향토주의자가 아니라 건실한 리얼리즘의 길을 걷는 미더운 작가의 한 분이다.

 이 단편에서 그는 어느 어머니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가족들에게도 짐만 될 뿐인 무능한 가장 대신 7남매를 키운 시골 아낙, 텃밭에서 미리 솎아낸 푸성귀들을 한 보따리 이고 신새벽에 20리길을 꼬박 걸어 포항 시장바닥에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던 채소행상의 긴 역사, 자식들이 장성해서 만류해도 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행상을 그치지 않던 그 어머니는 바로 평균적인, 너무나 평균적인 우리 어머니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은 그 어머니의 집념으로 자식들 가운데 유일하게 교대를 나와 대구에서 교사를 하는 막내아들의 시점을 취하고 있다. 그 시점에는 통증과 같은 회한이 서려 있다. 우리가 깜빡 잊곤 하는 어머니의 슬픈 역사를 환기하는 이 작품의 평범한 진실이 이 부황한 시대에 결코 범상치 않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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