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마다 설이나 한가위 때면 고향을 찾는 귀향전쟁을 치른다. 그런 교통지옥을 피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 이틀 앞서 갔다 먼저 오기도 하고 뒤늦게 갔다 뒤늦게 오는가 하면 시골에 계신 부모가 서울로 오는 융통성도 발휘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명절 전날 귀향하여 시골에서 명절을 쇠고 그 다음날 귀경한다. 그것은 설이나 한가위를 고향에서 보내는 관습 또는 보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다. 그런 관습이나 관념 때문에 사람들은 해마다 상당한 돈과 시간의 낭비를 감수하고 귀향전쟁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한다. 물론 이 관습은 친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폐쇄된 현대생활의 고립감을 해소해 주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관습이나 관념 가운데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것인데도 고수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경우 아들을 선호하는 관념이 그렇다. 오늘날 아들에 대한 선호는 현실적 타당성이 거의 없는 관념이다. 식구의 생계를 위해 집안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부모의 노후를 아들이 떠맡는 것이 원칙으로 돼있던 과거 농경사회의 대가족제도에서는 아들에 대한 선호가 타당했다. 그러나 식구의 생계가 가장의 취업에 주로 의존하고 결혼한 자식의 부모가 따로 사는 산업사회의 핵가족시대에는 아들에 대한 선호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관습·관념은 인간과 사회의 존속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그것이 때로는 사람들의 삶을 구속하는 멍에로 작용하는 수도 많다. 특히 현실적 타당성이나 정당성이 없으면서도 답습하거나 강요하는 관습·관념은 사람들의 삶에 짐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관습이나 관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관습이나 관념이 오래되고 또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관습이나 관념은 현실과 상관없이 고착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현실에 따라 새롭게 생성되고 변형되어야 하는 것이다.<이효성 성균관대교수·언론학>이효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