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남북통일에 대한 훈수도 놓고 또 필요하면 중재역도 맡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일이 잘 진행된다면 차기대통령후보로도 출마할 뜻을 비쳤다고 어느 신문인터뷰는 전했다. 한때 세계정치를 움직이는 막중한 인물이었고 지금도 그 인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고르비의 위치로 볼때 이런 말들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그저 지나가는 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생각된다.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에게는 분명히 명암양면의 두가지 역사성이 있다. 어두운 면은 그가 소련공산독재제국의 최고권력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인구의 절반을 호령하는 소련중앙기구의 사닥다리를 타고 최고지도자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재임중 KAL사건에 대한 어떤 적절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이 인물의 밝은 역사적 측면은 바로 자신이 최고지도자로 있던 소련공산제국의 체제를 깼다는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92년 5월 야인자격으로 미의회를 방문해 극진한 예우를 받은 일이 있었다. 미 의회는 고르바초프재단의 설립기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 온 그를 현직대통령 이상의 예와 경을 갖고 비록 본회의장은 아니지만 제2대대통령 존 애덤스가 취임한바 있는 스태투어리 홀에서 상하양원 중진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연설하게 하는등 최선의 대접을 했다. 그를 소개하는 하원의장, 상·하원 원내총무들은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르바초프에 대한 칭찬을 했었다. 그 때 홀이 얼마나 만원이고 경비가 심했던지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장취재를 하지 못할 뻔했다.
나는 연설이 끝난후 필 그레인등의 젊은 의원들에게 『소련공산주의의 과오, KAL기 격추에 대한 변명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데 저렇게 환영일색일 수가 있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이들은 「악의 제국」을 깬 역사성을 우선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었다. 고르비의 올바른 역사성은 공산주의체제로서는 국가를 존속시킬 수도, 인민을 평안히 살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페레스트로이카로 풀어보려 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는 면은 공산주의의 틀을 깼다는 이 측면이지 그가 한때는 대단한 권력자였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북한은 고르비를 처음부터 환영하고 있지 않다. 고르바초프를 정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거나 돌아가도록 부추긴다는 것은 그 인물의 역사성을 잘못 판단하는 일이다. 공산체제로서는 국가와 인민이 모두 살 수 없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게 하는 것이 그 인물됨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