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평양축전 중심행사도 프로레슬링/김부자 후원속 딸·사위도 북체육계 거물 오는 4월 「평화를 위한 평양 체육 및 문화축전」이 열리는 북한에서 재일교포출신 프로레슬러 역도산에 대한 추모열기가 일고 있다.
북한에서 력도산은 오랫동안 『민족을 빛낸 애국자』라는 공식 평가를 받아왔다.
평양축전의 중심행사가 프로레슬링이 된 것도 김일성·김정일부자의 력도산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다. 평양축전을 위해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등과 교섭을 벌이고 있는 인물은 력도산이 북한에 남기고 떠난 딸 김영숙. 평양체육대학 동창생인 남편 박명철은 수년전 북한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했고 넷째딸 혜선은 국가대표급 여자역도선수이다. 역도선수 출신인 박명철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90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북측 선수단장을 맡아 한필성―필화 남매의 상봉을 주선하기도 했다.
북한 언론들에 의하면 김일성은 93년1월20일 김영숙을 주석궁으로 불러 『아버지를 꼭 닮았다』면서 『역도산은 훌륭한 애국자였다』고 칭찬했다. 김은 이어 배석한 간부들에게 『역도산이 조선사람이면서 일본선수라는 욕된 운명을 진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식민지통치가 빚어낸 후과』라고 말했다.
력도산의 본명은 김신락. 24년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신풍리에서 농부 김석태씨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지난해11월24일자 노동신문은 3면 특집기사에서 그와 김일성의 「인연」을 우리측 또는 일본측 기록과는 다소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청년 김신락은 단오날 씨름경기에서 용력을 보이다가 39년2월 일본에 씨름단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김신락은 『일본사람이 되기 싫다,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항거하다 폭행을 당해 피투성이가 됐는데 이때 1등씨름꾼이 돼 복수를 하기로 다짐한다. 50년 우승을 했는데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승단이 되지 않자 프로레슬러가 된 그는 다시 일본 언론들의 차별대우와 동포들의 불신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잘돌봐주도록 지시하는 한편 김영숙을 일본에 보내 아버지와 상봉토록 했다. 61년 어린 김영숙은 어머니가 준비한 찹쌀과 고향의 산나물등을 가지고 아버지와 눈물어린 상봉을 한다. 이때 김영숙은 노래 「내고향」을 불렀다. 감격한 력도산은 62년4월 김일성 생일에 고급승용차를 선물했고 64년 동경 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의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에서도 결혼을 해 2남2녀를 두었던 력도산은 63년1월 문교장관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그의 자서전을 인민문화궁전에 김부자의 저서와 함께 전시하는등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역도산에 대한 사랑은 김정일에 의해 세월과 더불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고 추모하고 있다.<유승우 기자>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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