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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한기 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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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한기 선생님을 추모하며

입력
1995.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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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당선생이 떠나셨다. 이한기 선생님이 서거하셨다」 뜻밖의 비보에 둔탁한 고무방망이로 머리를 맞은듯 몽롱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말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마음이 저미어진다. 내 나머지 인생속에 선생님이 안계신다는 것이 이렇게 큰 공간을 만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떠나시기 수일 전 사모님과 함께 했던 정겨운 식사중에 「기당당」을 만들자는 몇제자들에게 온화한 미소로 답하시던 선생님의 자안이 몹시 그립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스승이셨다. 존경과 사랑으로 맺어지는 사제간에도 무엇인가 허점은 있게 마련이건만 서울법대 거의 전 졸업생이 한결같이 숭앙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시다. 한 스승이, 한 인간이 존경의 표상이 되는것은 일조일석의 기예나 몇년간의 절제정도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은 그 평생에 걸쳐 근엄하셨고 자숙하셨고 또 겸허하셨다.

 학문에 대한 한결같은 열의와 엄격한 공의 속에 참으로 자상한 인정을 갖추신 분, 작은 행동이나 나직한 한 말씀만으로도 태산같은 무게로 우리를 훈도하신 사표이셨다.

 30여년 계속된 정치·사회적 기복과 격변을 겪으며 선생님처럼 원칙을 지킨 분을 나는 보지 못했다. 참된 선배, 진정한 신사, 그리고 고매하다는 의미가 실체화될 수 있다면 선생님은 바로 그런 분이었다. 국내화냐 국제화냐의 차원을 넘어 선생님 자신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향을 대변하는 선각자이셨다. 약간의 벼슬이 선생님의 품격에는 차라리 오욕이었다는 아쉬운 마음을 몇분은 갖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은 평생 관직을 탐하지 않고 어떤 불의에도 굽히지 않으셨으며, 다만 민족과 나라의 앞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경우에도 성심으로 임하셨을 뿐이다.

 학자이며 애국자였던 선생님은 모든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편견없는 혜안을 갖고 계셨다. 한 제자가 상당한 정도의 정부 제의를 사양했을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능히 그럴 것이다』라고. 바로 당신에게서 배운 오연한 기백과 자부심, 그리고 결벽성을 선생님이 아셨기 때문이다.

 대학선배였던 내 가친에게 속아 해방전 종로의 뒷골목에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루고기로 알고 개고기를 먹었노라며 파안대소하시던 모습, 교통사고로 빈사의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실려온 제자를 보시며 눈물을 글썽이던 정경…. 수없는 일화들이 정리안된 화폭처럼 떠오른다. 단아함 속에 범접못할 기품으로 바른길을 걷게 하는 선생님의 가르치심이 평생토록 남으리라.

 삼가 옷깃 여며 내생의 평안하심을 기원한다.<이수성 서울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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