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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레퍼토리 「바보들의 낙원」/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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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레퍼토리 「바보들의 낙원」/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입력
1995.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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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외면된 파라다이스 바보들의 낙원이 지혜로운 자들의 낙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동숭레퍼토리의 창단공연 「바보들의 낙원」에서 작가 데이비드 마멧은 그 차이를 애매한 진실을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거짓되지만 명쾌한 허구적 관념안에 안주하기 원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찾는다.

 미국 현대작가를 대표하는 데이비드 마멧의 희곡 원제는 「올리아나」인데 이는 북유럽 민요에 등장하는 이상향 「바보들의 낙원」을 뜻한다고 한다. 마멧은 그 의미를 반어법적으로 사용하여 과연 극중 현실이 우리가 희구하는 낙원인지 묻고 있다.

 극은 40대 남자교수와 20대 여학생 사이의 면담이 성희롱에 대한 공방전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성희롱은 표면적인 액션에 불과할 뿐이고 작품의 묘미는 교수신분을 지키려는 남자와 과격한 페미니즘그룹에 의해 의식화된 여대생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갈등을 짚는 데 있다. 뒤틀린 논리와 편견에 사로잡혀 각자의 틀에 소외되어 있는 현대인에 대한 마멧의 통찰은 이 작품을 성희롱이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단순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성희롱에 대한 논란이 오래된 미국의 최신작을 이제야 성희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한국에서 초연할 때 작품이 갖는 민감성을 제대로 무대화하기는 무리인 듯하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자 유재철은 원작에는 거의 드러나 있지 않은 교수의 신체적 접근을 지나치게 표현함으로써 희곡의 섬세한 균형을 잃고 있다. 이는 한국 관객의 기대 지평을 지레 낮게 잡았거나 성희롱에 대한 위험수위의 기준이 미국에 비해 훨씬 높은 한국남자들의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지는데 두 가지 모두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작권문제로 해외 근작 희곡들의 소개가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작품을 번역한 김진나와 이를 초연한 동숭레퍼토리의 순발력이 돋보인다. 공연을 거듭하면서 미묘한 형평의 중심점을 드러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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