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 간사이(관서)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우리 정부가 즉각 피해 복구를 돕겠다고 밝혔을 때, 어떤 사람들은 착잡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날 한 노년의 택시기사는 김영삼대통령이 일본 무라야마(촌산)총리에게 의료진과 건설장비등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는 방송뉴스를 들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참 묘하군요. 오늘 아침 나는 지진 소식을 들으며 해방전 일본에서 일어났던 간토(관동)대지진을 생각했어요. 그때 일본에 가있었던 우리 형은 일본인들이 지진의 공포속에서 엉뚱하게 한국인들을 학살했다는 이야기를 한평생 몸서리치며 회고했지요. 이웃의 불행을 돕는것은 당연하지만, 착잡하네요』
일제시대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중에는 잠시 이런 기분을 품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지진피해가 드러나고, 침착하게 재난을 극복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이웃을 돕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번지고 있다. 특히 그곳에서 재난을 당한 우리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 자랑을 하지만, 일본의 교포들은 일본 국적을 얻으면 조국을 배신한듯한 느낌 때문에 그 사실을 숨기고, 구구한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났지만, 일본에 살게된 교포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거나 가난에 쫓겨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므로 조국에 대한 한맺힌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에 피해입은 교포들을 고국에서 돕기로 한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일본 난민들을 함께 돕는다면 일본인들의 뿌리깊은 차별속에 살아온 우리 교포들이 조국을 더욱 자랑스러워 하겠지요』
한국일보사가 지진으로 피해입은 재일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하자 일본에 살고 있거나 일본에서 살다온 사람들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전화를 주신 분들은 우리가 재일교포들의 한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한채 그들을 잊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재난을 도우면서 그들을 새롭게 기억하자고 말했다. 나라를 잃고 일본땅에 살던 날들이 하도 서러워 차마 조국의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 대가로 차별을 감수하는 동포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들은 강조했다.
한국일보에는 재일동포들을 도우려는 성금과 구호품이 답지하고 있다. 지난해 흑인폭동을 겪으며 고국에서 모금한 성금으로 힘을 얻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교포들도 재일동포 돕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내 다른 지역에 사는 교포들도 뛰고있다. 한 교포사업가는 떡국을 실어나르고 있고, 그래서 재난을 당한 동포들의 음력설은 따뜻하다고 한다.
간사이 대지진은 1923년 간토 대지진때 학살당한 한국인들, 이번에 피해입은 동포들, 그리고 이웃으로서의 일본인들을 다시 생각케 하고 있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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