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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방문… 「등사후」 관련 주목/조자양 복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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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방문… 「등사후」 관련 주목/조자양 복귀 가능할까

입력
199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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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반감커 부정론 우세/“지방갈등 해결 적임자” 부상 점치기도 중국의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등소평)의 건강에 관한 소문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89년 천안문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조자양·75)전당총서기가 광둥(광동)성을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의 광둥성 여행에 관한 홍콩 권위지 밍바오(명보)의 보도는 일단 시기가 시기인 만큼 지난 66년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했다 73년 캄보디아 시아누크의 환영연에 등장, 복권됐음을 과시한 등의 옛날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같은 연상은 아직 지나친 비약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조는 89년 실각후 한동안 연금상태에 있다 2∼3년전부터 당국의 허가를 받아 지방을 여행한 바 있다. 홍콩언론에 의하면 그는 지난해 봄에도 광둥성을 방문했으며 광저우(광주)시 부근에서 양상쿤(양상곤)과 회동했었다. 따라서 마오쩌둥(모택동) 조카딸의 안내로 공식석상에 나타났던 73년 등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조의 동정에 관한 보도는 그가 여전히 등사후에 가장 역할이 주목되는 인물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실각당시 조는 당적만 보유한 채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 92년10월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인 13기9중전회에서는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당을 분열시킨 과오를 범한』 것으로 최종 판정을 받았다. 국가기밀 누설 과오란 89년 5월 베이징(북경)을 방문한 당시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에게 덩샤오핑이 정책을 최종결정하는 중국의 최고 실권자라는 사실을 말했다는 것으로 제3국인에게는 희화적이기까지 하다.

 조가 이런 판정을 받은 것은 천안문 사태 당시 자신의 행동을 과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 등이 여러차례 사람을 보내 천안문 사태 당시의 행동을 과오로 인정하면 복권시켜 줄 것이라고 제의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조와 함께 천안문 사태의 무력진압을 반대했던 권력서열 4위 후치리(호계립)가 일찌감치 타협, 현재 전자공업부장으로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조의 타협거부는 등사후 천안문 사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가 등 사망후 마오쩌둥 사망후의 등처럼 정치 중심권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의 나이와 현 지도부내의 거센 반감때문이다. 특히 리펑(이붕) 총리, 차오스(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등 천안문 사건당시 그의 반대편에 섰던 현실력자들은 조의 복권이 곧 자신들의 종말을 의미하므로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가 권토중래할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그는 능력이 있다. 그는 스촨(사천)성 제1서기 재임시 농업개혁을 추진, 성공을 거두었고 중국경제 번영의 기초도 총리시절 그가 닦아놓았다. 그는 또 스촨성과 광둥성등 2개 성 지도자를 거쳐 총리와 총서기를 역임, 중국의 최대과제인 농촌문제와 중앙과 지방간의 갈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지도자로 꼽힌다.

 자오쯔양은 과거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잔명 일수를 헤아렸듯이 지금 광둥성을 여행하며 등의 남은 날을 세고 있을 지 모른다.<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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