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의 당명변경 번복소동은 여권의 일그러진 총체적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다. 민자당은 그동안 세계화라는 명분아래 당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한달여동안 이뤄진 개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억지논리로 말바꾸기, 극소수 당직자위주의 당무결정, 「윗분」눈치보기에 치중한 나머지 혼돈만 초래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민자당의 당명변경은 새해 벽두부터 김영삼대통령이 불붙인 민자당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김종필전대표몰아내기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굴절된 시선도 받았지만 『변화를 위한 여권의 몸부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았다. 『당간판을 내리는데 의원총회 한번 열지 않는다』는 소속의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은 당직자회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대국민현상공모에 나서는등 법석을 떨었다. 그 결과 「통일한국당」으로 사실상 확정돼 실무진에서는 통일한국당의 간판을 이미 준비해 놓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민자당이 또 다시 갈팡질팡하기 시작한 시점은 당헌개정의 최종절차인 당무회의개최를 불과 하루앞둔 지난 26일 하오. 총대는 문정수 사무총장이 멨다. 그는 하오에 모처를 다녀온뒤 갑작스럽게 전당대회준비위 소위원장회의를 소집, 당주변을 긴장시켰다. 당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또 뭔가 주문을 받은 모양』이라며 수군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문총장은 느닷없이 당명고수문제를 제기해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여론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이어 당무회의소집일인 27일 상오 전당대회준비위 전체회의와 시도지부위원장회의에서는 별 논란없이 30여분만에 「당명고수」를 의결했다. 그러나 그동안 『나라이름을 당명으로 쓰는게 뭐가 잘못됐느냐』 『집권당이 시대흐름에 맞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당명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목청을 높였던 일부 핵심당직자들은 아예 입을 닫았다. 강용식 준비위홍보소위원장만 『최종결론이 중요한 것 아니냐』며 곤혹스러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창피한 일을 창피한 줄 모르는게 우리 당의 가장 큰 문제』라는 한 당직자의 자조가 민자당의 현주소라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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