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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있어 외롭지 않다”

입력
1995.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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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지진에 삶터전 잃은 동포 임무수·준수형제/17년각고로 일군 정비공장·카페 잿더미로/“남은것 하나 없지만 동포애 힘입어 꼭재기” 『온갖 차별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조국이 있다는 확신입니다』

 지난 17일 새벽에 들이닥친 대지진으로 학교시설이 이재민들의 대피소로 변한 고베(신호)시 나가타(장전)구 가구라(신락)국민학교 3학년1반 교실. 삶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임무수(45) 준수(42)씨 형제 가족은 『남은 것은 없지만 조국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렇다고 림씨형제가 재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운동장 한켠에 레저용 테이블을 펼쳐놓고 형제가 머리를 맞대보지만 온몸을 휩싸고 있는 절망감을 떨치기가 힘들다.

 림씨 형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조국을 찾기 위해 우리말을 열심히 배워온 재일동포 2세. 이들은 일제하인 1931년 20대에 경북 달성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가 10여년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오는 봄 고향을 찾기로 했었다.

 일본 전역을 떠돌던 아버지가 1937년 고베에 정착, 일본인들의 갖은 차별대우속에 장성한 6남매에게 「조국을 잊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탓이다. 그런데 이번 지진으로 림씨형제의 소박한 꿈은 이제 물거품이 돼버렸다. 당장 피난소에서 내쫓기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림씨형제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은 고등학교 졸업직후. 성실하고 악착같은 형 무수씨는 17년간의 노력끝에 3년전에야 비로소 나니마쓰초(낭송정)에 40평 정도의 자동차정비공장을 마련, 생활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공장은 부서져버렸고 동생 준수씨가 호소다초(세전정)에서 경영하던 카페 「끽다 일레븐」도 쓰레기더미로 변했다.

 『맨손으로 일본에 건너와 2남4녀를 키운 부모님 생각을 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며 형제는 서로를 격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을 맺지 못했다.

 형 무수씨는 정비공장을 짓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은 4천만엔을 갚을 길이 막연해졌다. 정부의 각종 대책이 발표됐지만 당장은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 새벽 5시부터 밤11시까지 뛰는 억척으로 동포들 사이에서 「끽다 일레븐」 을 명소로 만들었던 준수씨도 2천만엔의 은행빚만 남았다.

 『60여년전 몸 하나로 현해탄을 건넜던 부모님의 당시 모습과 같은 상황』이라는 무수씨의 한탄은 수십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닦은 터전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모든 고베거주 동포들의 아픔이다.<고베=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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