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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의 도시」속 신비의 가능성 표출 김인환(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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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의 도시」속 신비의 가능성 표출 김인환(시평)

입력
1995.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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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남 몰래 흐르는 눈물」 김영태는 문단에 나온지 35년이 넘는 시인이다. 예로부터 그림과 글씨와 글을 고루 잘하는 사람을 삼절이라 한 관습에 따른다면 캐리커처에 능한 삽화가이고 무용평론가이고 시인인 김영태를 우리는 이 시대의 삼절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의 삽화와 평론과 시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색채가 배어 있다. 시와 춤과 그림을 늘 함께 훈련하는 과정에서 춤과 그림은 시의 내용이 되고 시와 춤은 그림의 내용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김영태는 내용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문체를 마련하는 데만 고심해온 듯하다.

 그의 글과 그림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 또 언제나 새롭다. 자연스러움과 새로움 사이에 눈에 띄지 않는 섬세한 감수성이 작용한다. 그의 문체는 음악적 영감을 따라가지 않는다. 물신의 지배로부터 감각의 진실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그의 감수성은 도취와 환상을 경계하는 비평적 능력과 서로 통한다. 그 비평적 감수성이 서울이라는 폐허의 메마름 속에서 편안한 인습을 거부하는 기쁨과 고통을 빚어낸다.

 그러나 그 기쁨과 고통은 순간과 우연에 좌우된다. 시와 춤과 그림속의 인간은 속절없이 흩어지고 마는 「모래인간」이다. 그것은 마치 원무를 그렸던 손잡음이 한 순간에 풀리고 마는 것과 같다.

 「현대시학」 1월호에 김영태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는 제목의 시 여덟편을 발표하였다. <무엇이 이제까지 나인가 질문을 하지만 답이 없습니다 시험지에 답 못쓰는 답답함 눈물을 흘릴 줄 몰라도 흐르는 눈물이 답입니다>  김영태는 혜화동 한 구석의 네평 반 글방에서 책 읽다 저녁에 춤 보고 글 쓰는 일을 완강하게 반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폐품이고 서향창에 어쩌다가 헹군 헝겊 천사라고 고백하는데,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지각의 현대성을 증명한다. 이 폐품들 속에서 그는 인영과 수진의 춤에 몸을 떨고 박남수선생과 친구 김현의 죽음에 마음을 쓴다. 흘리려는 의도가 없는데도 흐르는 눈물은 폐허가 된 서울에 아직도 신비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김영태는 자기 관을 싣고 가는 영구차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면서 어깨를 맞대고 코를 푸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림 그려본다. <몸 가누지 못하는  누이들과 나는 생전에 더러 몸도 섞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신비는 우리에게 사랑했고 사랑받은 몇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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