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권력욕 민의앞에 “두손”/「합의통일」깬 세력 국민염원은 못깨 결국 “무력흡수” 예멘에서 만난 많은 정치인 학자 시민들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져 보았다.
『통일 4년만에 예멘은 내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가』
답변은 대체로 두가지로 모아졌다. 하나는 전쟁은 통일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민정서가 통일을 어떤 가치보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전쟁의 상처를 겪었고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도 통일 그 자체를 후회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시바여왕의 통치로부터 기원하는 4천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예멘의 분단은 국제정치적 분단형이나 내전형 분단이라기 보다는 남북이 각각 수세기동안의 식민통치로 인한 역사적 분단형에 가깝다. 통일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1918년 오스만터키로부터 먼저 독립한 북예멘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남예멘의 독립세력을 도왔다. 남예멘은 67년 소련의 결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독립했고 그 결과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선다.
구남예멘 집권당인 예멘사회주의당의 기관지 알사우리 신문의 압둘 바헤르 편집국장은 『남쪽의 사회주의는 동구와 다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보다는 내셔녈리즘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사나대 정치학과 알 샤리프교수는 『남북 국민들은 통일을 당연한 미래로 여겨왔다. 통일에는 정치적 계산도 있었겠지만 우선 국민들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기대는 예멘의 통일이 독일이나 베트남처럼 일방적인 체제흡수이거나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 협상과 합의에 의해 성취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남북의 정치세력이 72년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지지부진하나마 18년동안이나 협상 테이블에 마주한 것도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통일염원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오히려 정치였고 정치인들 이었다. 그들은 오랜 협상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신뢰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90년 남북정치인들은 통일을 결단했지만 여기에는 자기중심적인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통일된지 4년이 지나 발생한 전쟁의 주요원인으로 지적되는 군대의 통합실패는 힘을 유지하기 위한 양측의 불신과 반통일적 사고방식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전쟁은 권력을 양보하지 않고 재창출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의 권력투쟁이 가져온 결과였다. 발전적 미래를 위한 효율성을 무시하고 모든 권력의 핵심을 산술적으로 양분한 것은 진정한 화합과 양보가 아니라 상호 견제심리의 발로였다.
중립적인 신문인 예멘 타임스의 알 사카프편집국장은 『통일의 진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국민 뿐이었다』고 진단했다.
예멘의 정치분석가들은 구남예멘 지도부가 전쟁에서 패한 가장 큰 원인은 남예멘대통령이었던 알아베이드 통일예멘 부통령이 전쟁발발 직후 분리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반통일선언은 남예멘국민들로부터도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북예멘에는 오히려 통일헌법을 수호, 통일을 지켜야 한다는 전쟁계속성의 명분이 됐다.
북예멘 군대가 남예멘 수도인 아덴에 진입했을 때 아덴 시민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체제는 달라도 민족은 하나이고 통일은 운명적 당위라는 예멘국민들의 염원이 없었다면 예멘통일은 역사의 시험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사나=한기봉특파원>사나=한기봉특파원>
◎통일실무책임자/알 아라시장관(인터뷰)
90년 5월의 예멘통일과 그 이후 과도기에 통일의 실무책임자였던 알 아라시 문화관광장관(당시 통일부장관)은 『통일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지도자간의 상호불신이 청산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멘의 통일은 충분한 준비없이 이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20여년간 협상했다. 체제융합과 행정사무등 실무적인 면에서는 대부분 준비가 이뤄졌다. 20여년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럴수록 통일의 당위성은 부각됐다. 사우디등 주변환경이 통일의 저해요인이었음에도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의지가 확고했고 정치세력이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된지 4년만에 일어난 전쟁은 대화에 의한 통일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게 아닌가.
『전쟁은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정치세력간의 불신이 누적된 결과다. 통일의 물줄기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무력에 의존해서라도 재분리세력을 막아야 했다』
―통일협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측이 통일헌법을 준수할 태세가 우선 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조성돼야 하며 지도자는 국민이 진실로 원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
―전쟁으로 인한 재통일후 국가운영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대목은.
『정당별 안배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 위주로 역할을 맡기고 민주화와 개혁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민주화만이 통일을 공고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사나=한기봉특파원>사나=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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