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과 당에 대해 내가 이 자리에 너무 오래 재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민주주의에 있어 가장 해로운 것은 어떤 사람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1976년 3월16일 해럴드 윌슨영국총리가 돌연 총리직사퇴를 선언하자 국민들은 크게 놀랐다. 윌슨이 누구인가. 8세때 아버지가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사진을 찍어 줬을 때 장차 이 집 주인이 될 것을 결심했던 그는 옥스퍼드대학을 수석졸업한 후 모교강단에 섰다가 26세때인 1945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약관 31세때 애틀리내각의 대외무역장관을 지냈다. 63년 게이츠겔에 이어 노동당당수를 맡아 총선거서 승리, 46세에 총리가 되어 재임중 70년선거서 히드보수당당수에게 패배했으며 74년에 재집권한 영국정가의 떠오르는 별이 아닌가.
60세인 그가 스캔들이 있었던것도 아니며 또 침체된 경제도 차츰 회복시켜 사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10년은 넉근하게 더 활약할 수 있는 탄탄한 인기도 있지 않은가.
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조국은 귀하의 계속 봉사를 원한다』고 하자 윌슨은 『나는 어떤 특정인, 나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독선)을 거부한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들은 처음 사퇴발표에 의구심을 가졌었으나 민주발전과 후진을 위해 용퇴(용퇴)하려는 진심과 큰 뜻을 알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도대체 선진민주국에서는 정치분야에 있어 세대교체라는 말이 없다. 어떤 계기, 특히 총선거때마다 전체의석의 5∼8% 정도의 원로·중진들이 후진을 위해 자퇴하여 자연스럽게 물갈이가 되기 때문에 노·장·청간의 갈등이 없다. 원로들은 2선으로 물러서서 후진들을 지도하고 현역들은 원로들에게서 노련한 경험과 경륜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세대교체란 말이 처음 제기된 것은 60년 4·19직후 학생들에 의해서였다. 자유당정권을 붕괴시킨 학생들은 여세를 몰아 각 분야에 걸친 개혁의 일환으로 「기성세대 물러가라」고 외쳐 학원등에서 격심한 진통이 일어났다. 특히 정치분야에서는 장면정권때 부정선거관련자들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5·16후엔 정치정화법, 80년 신군부가 정치활동규제법등으로 구정치인들의 발을 묶는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정계의 세대교체는 꼭 한 번 성공한 적이 있다. 69년말∼70년초에 선언된 40대기수론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한민당 이래 30여년간 지속돼 온 야당의 가부장적인 원로체제에 정면도전하는 엄청난 사건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후 40대기수3김체제에 의한 정치가 지난25년간 험난한 격랑속에 민주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해 왔음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정치의 틀」이 10년이상 지속될 경우 반드시 갖가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대적변화와 국민적 요구에 의해 당연히 바꿔야 한다. 3김체제의 경우 두차례의 대선을 거쳤고 냉전체제종식―공산체제붕괴와 민주화촉진등 나라 안팎에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엉거주춤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하루 빨리 정리,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본인들은 30∼40년간 쌓은 오랜 관록과 경륜에 대한 자긍심과 웅지를 관철하겠다는 신념을 버리기가 힘들 것이다. 또 아데나워전서독총리가 73세에 총리가 되어 84세에 물러날 때까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처칠이 66세에 집권, 2차대전을 치렀으며 레이건이 70∼78세에 대통령에 재임했고 이승만박사가 73세에 대통령에 취임, 85세에 퇴임한데 고무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들은 특수한 예로서 대체로 국난시기에 국민들의 요청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선진국처럼 선후배간의 원만한 악수교대와 협조하는 풍토다. 시대적 역할이 끝났을 때 흔연히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물러서고, 후진―현역들은 원로들을 깍듯이 존중하며 높은 경륜을 귀담아 듣고 활용하는, 그렇게 해서 물갈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해야 한다. 이번처럼 물리적으로 밀어내기식과 못나가겠다고 버티는 모습은 마지막이 돼야 한다.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태 구습의 재연인 것이다.
이제 정치도 과학화·현대화해야 한다. 연에 의한 편가르기, 지역주의, 자리나누기, 당략적 자세들을 모두 버리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21세기를 겨냥한 정책경쟁의 정치로 탈바꿈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여·야당의 전당대회는 바로 주요 당직과 각급선거의 후보공천을 민주적 결정하는등 정치의 새 틀을 짜는 대회가 돼야 한다.
20여년전 윌슨의 퇴진은 오늘의 우리 정계 원로와 현역,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해 귀중한 교훈을 남겼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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