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새벽 일본 간사이(관서)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닷새째 계속되는 현장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놀라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진이라는 대재앙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일깨워주는 참사현장도 현장이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대재앙을 맞은 일본인의 모습은 더한 놀라움이었다. 실감하기 어려운 대재앙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잿더미 속에서 새 삶을 일궈가는 모습, 결코 미소를 잃지 않고 건물더미에 묻힌 이웃을 위해 기꺼이 삽을 드는 모습은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무서운 질서의식
NHK방송의 24시간 생중계, 국내 신문과 방송의 보도는 고베(신호)시를 중심으로 한 참사현장을 생생히 그리고 낱낱이 보여 주었다.
평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대재앙을 맞은 일본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무너져내려 불타고 있는 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비탄에 빠진 모습은 아니었다. 집을 잃어 차 안에서 밤을 지새는 한 가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여진의 위험을 피해 학교 운동장에서 담요를 쓰고 주먹밥을 먹고 있는 이재민들중에도 울부짖거나 몸부림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식수를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생필품가게에서도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등 사재기혼란은 없었다고 한다. 차량의 통행이 거의 끊긴 현장부근의 교차로에서조차 차량이나 사람 모두 신호를 지켰다. 혼란의 와중에 폭리를 취하거나 약탈한다거나 하는 사례도 보도되지 않았다.
일부에서 당국의 소홀한 방재대책과 늦은 사후수습등을 비판하는 소리가 나오고 부분적인 혼란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우리네 대형참사 현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우리와는 대조적
만약 우리에게 간사이대지진과 같은 대재앙이 발생했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숱한 사고때마다 온 나라가 마비되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우리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가 두렵다.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때 방화 살인 약탈이 일어났고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간사이대지진 현장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어떤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한 일본인들의 이같은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봉건사회에서부터 체질화된 집단의식, 지진 태풍등 자연재해와 전쟁에 따른 훈련과 몸에 밴 위기대응능력, 극기를 중시하는 어린이교육등 여러 분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분석결과가 어떻든 대지진현장을 지켜 본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경제대국 일본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그 바탕은 얼마나 탄탄한 것인지를 느꼈을 것이다.
○선진국향한 교훈
1년전 똑 같은 날에 일어난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진을 두고 일본인들이 『우리는 내진설계가 완벽해 이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을 기억해낸 일부 언론들은 간사이대지진으로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비꼬았지만 간사이대지진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들은 개미가 무너진 집을 다시 짓듯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간사이대지진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지만 선진국을 향해 달리는 우리에겐 천금을 주고도 얻기 어려운 귀중한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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