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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단편 「마른 꽃」/최원식 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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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단편 「마른 꽃」/최원식 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소설평)

입력
199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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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승스러운 시간」의 의미사람과 사람, 특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끌림과 내침의 내밀한 과정을 바라보노라면 역시 이론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신비로운 그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마련이다. 물론 신비라는 말로 이 문제를 영원히 인식의 영역 바깥으로 모셔 두자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인간학이 미치지 못한 한계를 겸허히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총체적 이해의 지평이 열릴 미래를 열어 두자는 뜻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은 절묘하게 사람의 깊이를 통찰하고 있는 셈인데, 무릇 소설이란 바로 이 「사람의 깊이」에 대한 가없는 도전이다. 이때문에 기존의 인간학의 어느어느 관점에서만 인간에 접근하는 소설가란 인간을 그 물질적 조건에서 분리해 추상화하는 또 다른 편향만큼이나 자격미달이라 해도 좋다.

 「마른 꽃」(문학사상 95년 1월호)은 박완서씨의 여성, 아니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가 원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줄거리의 뼈대만 추리면 간단하다. 자식들도 다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나이 지긋한 미망인이 대구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동승한 은퇴한 홀아비 조박사와 연애 비슷한 것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작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답게 다양한 삽화들을 솜씨좋게 배치하여 한 편의 근사한 단편을 뽑아냈으니 그녀의 문학은 환갑을 넘어서도 정정하기 짝이 없다. 한 때 반짝하고 사라지는 문인들이 지천인 우리 문단에서 그녀의 존재는 경이롭기조차 하다.

 그 장수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낭만적 탈출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 야멸차기까지 한 그녀의 지독한 산문정신에 있다. 이 단편에서도 그것은 예외없이 관철된다. 늙마에 찾아든 달콤한 연애감정에 젖었던 작중 화자는 조박사와의 연애가 산문적 생활에 대한 반동에서 말미암은 겉멋임을 문득 눈치채고 재혼의 제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가 아니면 안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 깨달음에 경탄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일탈이 정지된 것에 한편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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