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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밀어내기 오래전의 계획”/측근이 밝히는 YS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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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밀어내기 오래전의 계획”/측근이 밝히는 YS의 「구도」

입력
199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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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엔 작년 5월전대를 적기로/보선때 김명윤씨 낙선으로 차질 『김영삼대통령의 김종필대표 2선퇴진, 민자당당명변경 방침은 어제 오늘에 갑작스럽게 내려진 결정이 아니다』

 김대표파동의 와중에서 최근 한 여권 고위 핵심관계자가 전하는 말이다. 김대표가 『세계화라는 얼토당토않은 명분으로 나를 밀어내기 위해 애궂은 당명을 바꾸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이 관계자에 의하면 김대통령이 당초 「김대표교체의 적기」로 상정했던 때는 지난해 5월 민자당 정기전당대회. 김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측근 인사들에게 『3김시대는 나로서 끝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김대표를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게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자주 피력했었다고 한다. 이같은 구상이 표면화된 시기는 지난 93년 6월의 국회의원보선.

 당시 민자당은 명주·양양지역에 별 연고가 없는 민주계 원로 김명윤 전의원을 전격공천했었다. 이는 곧바로 『김씨는 김대표의 대타로 낙점된 인물』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당시 민주계측은 이를 극력 부인했었지만 이번 기회에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민주계의 구도는 뜻밖에도 김전의원의 낙선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 여권핵심부는 『대표직 1년 재임으로 대선당시에 진 빚은 충분히 갚았다』는 생각으로 93년말까지도 김대표 교체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암중모색를 계속해 왔으나 여전히 대안부재의 벽을 뚫지 못했다. 사태가 이렇자 여권핵심부는 94년으로 예정된 정기전당대회를 열어 김대표를 재차 신임하기보다는 전당대회 자체를 연기키로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김대표의 「수명」도 여전히 시한부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가 하면 민자당간판에 대한 손질은 당초 지난 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후보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민자당총재직을 넘겨받은 뒤 김후보측에 의해 적극 검토됐었다는 후문이다. 대외적 명분은 「민자당의 변화와 개혁」이었지만 실제로는 「3당합당의 굴레 청산 및 6공과의 사실상 단절」이었다는게 솔직한 얘기이다. 하지만 당시 민자당 창당주역으로 멀쩡히 현직에 있는 노대통령을 자극해봤자 선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당시 이를 단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대통령의 당세계화구상은 결국 신여권의 해묵은 2개의 숙제를 처리하는 지렛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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