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1일 매서운 겨울날씨에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는 5천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에 흥분의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발해를 꿈꾸며」 노래중에 갑자기 커다란 태극기가 나타났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모두 거수경례를 했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이 민족음악인지 그 무슨 「세계화」된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공연 중간에 대형 태극기를 등장시키고 거수경례를 하는 「아이들」과 관중들의 마음속에는 「민족」을 생각하는 그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을 줄 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지구의 다른 한 곳에서는 민족의 독립을 사수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때 전세계가 두려워했던 러시아군은 인구 1백20만밖에 안되는 체첸을 두달동안이나 공격했지만 체첸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도저히 물리적 힘의 방정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체첸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체첸민족은 19세기에도 러시아와 40년간이나 싸운 민족이다. 결국 러시아는 체첸을 정복했지만 체첸민족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곧 러시아군은 그로즈니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체첸민족의 저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체첸민족의 힘은 그들의 「민족주의」에서 나온다.
역사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우리들은 지금 세계화를 말하고 있지만 행동하는 인간들의 동기는 민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보스니아에서 체첸에 이르기까지 냉전이후의 분쟁들은 민족들의 투쟁이며 동유럽 공산정권들의 몰락도 동유럽 민족들의 반러민족주의가 중요한 동기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는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에 대한 소수민족들의 반항의 세기였고 20세기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제국이 민족들의 저항에 부딪쳐 붕괴되는 세기였다.
성급한 사람들은 이미 민족국가의 역할이 끝난 것처럼 말한다. 「세계화」된다는 것이다. 실은 이미 19세기에 「세계시장」의 등장으로 「민족간의 갈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그후 마르크스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회주의자들은 1907년 제2코민테른대회에서 민족국가에 대한 충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1914년 8월 유럽에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사회주의자들도 계급이 아닌 민족의 편에 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사회주의를 능가한 것이다.
어느 먼 훗날 인간들은 민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단지 인간으로서 서로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민족을 떠난 인간은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세계화를 논하면서 「민족주의」의 힘을 간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분단된 민족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북한동포들은 그 말할 수 없는 궁핍과 압박 속에서도 민족주의에 불타고 있다. 물론 그들의 민족주의는 통치자의 조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6·25전쟁중에 엄청난 수의 북한주민들이 자진해서 북으로부터 남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한 김일성은 자신의 지배기반이 그처럼 불안정한데 충격을 받고 북한인민의 정치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주체」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민족주의전략이 유효했다는 사실은 김의 상징조작 이전에 북한동포들의 마음속에는 민족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민족의식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들도 배타적이고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세계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허락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어 가고 있다.
다만 두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하나는 「민족주의」의 힘이다. 체첸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에도 쿠바,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모두 물리적 힘의 방정식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민족주의」의 힘을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힘을 생각할 때 경제, 군사등의 지표만 보아서는 오판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는 물리적 힘의 방정식을 뒤엎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세계화」된 음악도 좋고 세계화경영도 필요하겠지만 기억할 수도 없는 그 먼 예부터 이 땅 위에 함께 살아온 동족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구태여 민족주의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자신의 민족적 정체를 망각하고 남들이 치는 장단에 춤춘다면 남들이 웃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사회과학원장>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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