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가득찬 아메리칸 드림 해부 빌리 와일더(BILLY WILDER·88)는 『좋은 감독이 되려면 각본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은 전투에 나간 장군이며 각본은 작전계획이라고 생각했다.
비평가들로부터 『작품이 대사에 너무 의존해 시각적·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와일더는 면도날같은 위트와 독설, 경구와 무자비한 냉소의 대가였다. 이런 것들은 그가 고향 빈과 베를린에서 폭로기자로 이름을 떨치며 연마한 것으로 그의 「말씀」을 모은 언행록까지 나왔다.
「제17 포로수용소」(STALAG 17·패러마운트)는 와일더의 글 실력과 연출솜씨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온 50년대 걸작미국영화중 하나로 전쟁포로영화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당당하고 감동적인 이 흑백영화는 브로드웨이 히트연극이 원전이다. 2차대전중 독일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미공군 하사관들의 잡다한 일상과 「갇힌 자」 대 「잡아 가둔 자」간의 신경전을 박력있고 긴장감 넘치게 그렸다.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 애국심과 투지와 탈출시도가 스릴 넘치는 속도로 묘사됐다. 추운 겨울, 암담한 포로들의 얘기이면서도 유머가 가득해 박장대소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의 개성묘사가 뛰어난데 그중에서도 깍쟁이 양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세프턴역의 윌리엄 홀덴의 활짝 열린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시가를 질겅질겅 씹어대면서 자기 몸보신만 생각하는 자의 이기적이요, 냉소적인 연기를 대담무쌍하게 해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홀덴은 동지들의 탈출계획을 『무모하다』고 코방귀를 뀌면서 배를 곯는 동지들이 앞에서 난로 위에 달걀프라이를 해 혼자 먹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연기를 눈부시게 해낸다. 세프턴이 영화 마지막에 수용소를 탈출하면서 『너희들 다음에 길에서 날 만나도 아는 체 하지마』라고 내뱉는 장면은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장면.
기자생활을 집어치우고(모자라는 생활비는 남창노릇을 하며 보탰다고 한다) 독일 우파영화사에 취직, 각본을 썼던 유대계 와일더는 히틀러집권과 함께 30년대초 파리로 도주했다. 이어 멕시코를 거쳐 할리우드에 도착한 그는 37년 패러마운트사에 들어가 명콤비가 된 찰스 브라켓과 함께 「니노치카」(39년)와 「불덩어리」(41년)같은 히트작의 각본을 썼다.
감독데뷔작은 코미디 「어른과 아이」(42년). 이어 「이중배상」(44년)과 그의 첫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인 「잃어버린 주말」(45년)등 명작을 내놓았다. 와일더와 브라켓은 「선셋대로」(50년)를 마지막으로 헤어진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과 미국의 편견, 결점을 비꼰 와일더의 최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와일더는 「하오의 연정」을 시작으로 57년부터는 또 다른 명콤비인 IAL 다이아몬드와 각본을 공동집필했다. 50년대는 와일더가 코미디와 오락물등 가벼운 영화를 만들었던 때로 「7년만의 외출」(55년), 「뜨거운 것이 좋아」(59년), 그리고 두번째 감독상 수상작품인 「아파트 열쇠를 빌려 줍니다」(60년)등이 그런 것들이다. 와일더는 81년 「친구야 친구」까지 작품활동을 했지만 예술성이나 대중성에서 「아파트…」이전의 것들을 못따르고 있다.
로맨스영화, 풍자영화, 스릴러등 다양한 장르에 고루 재주를 보였던 와일더의 작품은 지성과 재미가 절묘히 배합돼 있다. 그는 때로 조야하고 악취미적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몇 안되는 가장 독창적이요, 총명한 감독중 하나임에 틀림없다.<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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