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요·검은돈 은신처 없어져/담보선호 줄어… 대출관행 변화 『부동산실명제는 80여년간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온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관행을 바꾸게 될 것이다』 부동산실명제 실시가 발표된 직후 재정경제원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실명제로 신용사회의 정착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그것이 「망국병」으로 불리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장이나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동산을 사 두면 언제나 큰 돈을 벌었기 때문에 누구나 부동산을 잡으려고 했다. 부동산에 관한한 항상 실제이상의 가수요가 일어났다. 가수요가 있는 한 가격은 뛴다. 특히 땅처럼 한정된 자원의 가격은 갈수록 큰 폭으로 오르게 마련이다.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고 그것이 문제가 될 때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조치는 수없이 나왔지만 투기를 뿌리째 뽑지는 못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실명제의 타깃인 명의신탁은 그 대표적인 구멍이다. 부동산을 사 다른 사람의 명의로 등기를 해두면 우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각종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어 세금을 한 푼도 안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얼굴을 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명의신탁은 큰 손들이나 검은 돈을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이용해 왔다.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어도 명의신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두 사람만 입을 맞추고 비밀로 하면 당국으로서는 알아낼 길이 없다. 하지만 두 사람간의 좋은 관계가 언제까지나 지속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명의를 빌린 실소유자(명의신탁자)는 항상 상대방의 동정을 살펴야 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부동산실명제는 한마디로 등기자를 실소유자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뒤엎기가 상당히 어렵다. 설사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당하고 과징금을 물거나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동산은 필요한 사람만이 사고 파는 실수요자 위주의 거래로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재테크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된다. 지금까지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부동산과 주식등 금융투자 두가지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시대는 끝난 셈이다.
물론 앞으로도 부동산은 투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수익률을 따져보면 은행 상품이나 주식등 다른 투자대상과 비슷하게 된다.
부동산실명제는 은행경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은행이 대출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담보는 부동산이다. 부동산가격은 최소한 내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아무리 신용대출을 강조해도 지난해말 현재 일반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전체의 33%를 넘고 있다. 이같은 은행대출관행은 기업들의 부동산 선호를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됐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동산보다는 기업의 경영상태나 장래성등이 담보역할을 할 전망이다. 부동산가격 폭락을 경험했던 일본의 은행들이 지적소유권도 담보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결국 부동산실명제는 신용사회 정착을 앞당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상호기자>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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