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교류 바람직… 핵합의 이행에도 도움 95년은 북·미간의 핵합의뿐만 아니라 남북한간 화해의 성패가 판가름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나는 지난해 12월 한국방문을 통해 2가지 곤혹스러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한국에서 북·미합의에 대해 커다란 오해가 가시지 않고 있으며 둘째는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통일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방법론에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일고 있는 사실은 이해할 만하다.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문제를 북·미간의 이슈로 유도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북한측이 이를 이용해 남북관계를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정책관리의 미숙에 따른 결과이며 클린턴행정부의 전략부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제부터의 문제는 현시점에서의 정책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이다. 제네바 합의는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로 하여금 핵위협을 제거하는 동시에 이 문제를 다시 남북한간의 기본틀안으로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이 핵문제를 남북한간의 문제로 격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한국도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 관계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핵합의는 이행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네바 합의는 결국 미국이 아닌 한국측의 행동에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남북관계가 실감날 정도로 뜨거워지지 않는 한 경수로 건설에 소요되는 경비중 20억달러가량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북한 역시 현재의 긴장된 남북관계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수백명에 달하는 한국의 엔지니어나 기술자, 근로자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제네바 핵합의의 바탕에 깔린 가정과 논리에 따라 전략적인 선택을 하게돼 있다. 즉 우방국들은 북한의 핵동결 대가로 그들에게 후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대결을 피하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유도해내는 「구출」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정은 북한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경제개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합의후 한국내 재벌들의 대북진출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이 올해 중반께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나면 도쿄에도 북한의 연락사무소가 들어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보아야한다. 그렇게되면 일본 기업인들의 북한진출도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등 우방은 민간기업의 대규모 진출이 이뤄지기 전에 북한이 원하는 대미, 대일 외교관계수립이나 평화협정체결, 세계은행가입, 외국인투자유치등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병력의 휴전선철수와 재래무기 감축등 남북한간의 화해를 촉진시킬수 있는 공동전략을 마련해야한다. 남북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북한이 현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장난을 치고있기 때문임이 분명하지만 한국정부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한가닥 원인이있다고 본다. 결국 한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처벌과 화해 가운데 어느쪽이 국익에 궁극적으로 부합될 것인지를 따져본뒤 이에대한 결정을 내려야한다.
현시점에서 북한은 남북화해를 공식 추진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치 못하고 있는 것같다. 이 경우 우리는 또 다른 분단국인 중국과 대만의 과거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88년 대만이 중국에 대한 교류에 착수했을 때 대만정부는 기업인이나 친지 그리고 문화사절등의 중국방문을 허용한 뒤 그저 구경꾼의 위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부터 지속된 양안간의 교류는 2∼3년후 정례적이고 비공식적인 정부간 접촉으로 이어져 나갔다.
한국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11월 밝힌 기업인의 방북허용 조치를 확대해 체육인이나 학자들의 교류를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간차원의 접촉을 확대하다보면 서로가 상대방을 편안하게 느끼게되어 자연스럽게 총리회담이나 정상회담등의 공식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올해의 남북화해가 어떻게 진척될 것인지는 제네바합의의 운명뿐만 아니라 남북통일의 방법과 속도를 가늠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미진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국무부 아시아담당 고문역임>미진보정책연구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