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가 흐느적거린다. 군인이 휘청거린다. 물질만능과 향락주의에 휘말리면 방향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표류한다. 육사 출신의 현역 중위가 은행강도로 돌변했다. 「장교마저…」하는 배신감이 뼈를 찌를듯 아프다. 젊음의 파괴와 더불어 무너진 군기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에 앞서 사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충격에 사로잡힌다. 지난해의 장교무장탈영이나 사병의 하극상에 비할바 아니다.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일이다.
군인, 특히 장교는 명예와 나라에 대한 충성에 산다. 이러한 군인정신의 기본은 극기에 있다. 자기를 이기고 나아가서 자기를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트의식과 긍지에 넘치는 사관학교의 교육은 여기에 역점을 두는 게 마땅할 따름이다.
은행강도가 된 젊은 장교는 이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밟고 날려 버렸다. 스스로 털어 놓은 범행동기와 경위가 어처구니 없다. 고작 이 수준이란 말인가, 절로 탄식이 터진다.
「경마와 술값으로 탕진한 빚을 갚고 승용차를 사려했다」는 고백은 굴절된 젊은이의 인격과 어지러운 세태와 풍조가 암담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따져보면 장교은행강도의 신상과 환경은 어둡지 않다. 상위권 성적으로 육사를 마치고 서울대법대의 위탁생으로 면학중이라니, 선택받은 젊음이고 장래가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중심을 잃고 자신의 억제와 절제에 실패했다.
그의 범행은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국군의 명예와 신뢰를 또 한번 실추케 했으며 그 파장은 국민불안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러한 치욕과 불명예가 치유되려면 그만한 진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새삼 군기해이에 따른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총기관리의 문제와도 당연히 연계된다. 군 개혁작업의 여파로 한때 동요가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가 정착될 시점에 온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거듭나기를 국민에 약속했으면 응분의 조치와 구체적인 실천이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아직은 개선의 확고한 징후가 보이지 않음은 답답한 노릇이다.
몇몇 돌발사건이나 사고를 두고 군 전체에 외연시키는 비약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혁은 상처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만큼 치유도 빨라야 한다. 군은 언제나 곁눈질할 겨를조차 없다. 국가안보는 곧 긴장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군은 나라의 사활이 걸린 사명을 짊어진 특수집단이라는 인식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뢰받는 군대만이 강군임을 거듭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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