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의 미학」 추구/광고계서 기량닦아 영상미 탁월/「위험한 정사」로 스릴러붐 주도 자신의 신원을 상대에게 완전히 공개하고 하룻밤 바람을 피우는 것은 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유부남들의 사고방식이기 쉽다.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파라마운트)도 이런 식으로 외도를 했다가 여자가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죽을 고생을 치르게 된다.
타는 듯이 야한 이 에로틱 심리스릴러가 87년 9월에 개봉되자 미국은 마치 새로운 문화현상이나 맞은 듯 법석을 떨어댔고 타임지는 이 영화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흥행에서는 총 1억2천만달러를 벌었고 아카데미작품, 감독, 여우주·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가 이처럼 화제가 된 것은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감과 함께 에이즈 공포에 시달리는 80년대말 미국인들의 섹스에 관한 악몽이라는 시대정신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룻밤 불장난의 후유증이 당신을 물고 늘어지다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성 우화였다.
아름다운 아내 베스(앤 아처), 여섯살 짜리 귀여운 딸 엘렌과 셋이서 그림처럼 완벽한 삶을 누리는 맨해튼의 변호사 댄이 유혹적이고 관능미 있는 출판사 간부 알렉스(글렌 크로스)와 하룻밤 격정적인 정사를 즐긴 것은 아내와 딸이 없는 주말이 따분해서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괜찮은 남자는 모두 임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외롭고 호르몬분비가 왕성한 알렉스에게 그것은 목숨까지도 내걸 수 있는 「내 것 차지」의 행위였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여자와 그것을 떼어버리려는 남자 사이에 칼부림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
유사한 내용 때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71년)의 모조품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 영화는 70년대초 영국에서 TV광고필름으로 성공한 에이드리언 라인(ADRIAN LYNE·53)의 첫 내용있는 영화다.
이 영화 이전의 「플래시 댄스」(83년)와 「나인 하프 위크」(86년)는 번쩍거리는 야한 영상에 값싼 선정성을 가미한 스타일 일색의 작품이었다. 「위험한 정사」는 스타일리스트 라인으로서는 시각미보다는 잘 개발된 인물과 관심있는 주제를 탐구한 히치콕 스타일의 작품이다.
자기여자를 1백만달러에 하룻밤 빌려주는 내용의 「은밀한 유혹」(93년)을 비롯해 라인의 영화들은 탁월한 시각미를 갖추고 있다. 광고필름에서 닦은 기량 탓인데 그의 이같은 배경은 작품의 정확한 시장성 진단능력도 갖게 해줘 흥행성감독으로 꼽힌다. 요즘도 틈틈이 광고필름을 만드는 라인과 영국에서 같은 시기에 광고필름을 만들다 영화감독이 된 동료들로는 리들리 스콧(블레이드 러너), 앨런 파커(불타는 미시시피), 휴 허드슨(불의 전차)등이 있다.
현대판 도덕극인 「위험한 정사」는 당초 비극적 결말이었다. 알렉스가 자기가 좋아하는 푸치니의 비극오페라 「나비부인」을 틀어놓고 댄의 지문이 묻은 칼로 자살, 죽어서도 댄에게 복수한다.
그러나 시사회 결과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재촬영했다. 때문에 『잘 나가던 로맨틱 스릴러가 마지막 가서 버렸다』는 욕을 잔뜩 먹었다.<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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