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의 국제사회를 건설하기위한 노력은 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진행돼왔지만 최근 냉전체제의 와해이후 오히려 방향성을 잃고있다. 「현대」와 「첨단」 「진보」등의 수식어로 대변되는 20세기가 이런 추세로 간다면 「고통으로 점철된 20세기」로 역사에 남을 게 분명하다. 우선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서방이 이뤄놓은 중요한 업적들은 이제 그 기능과 역할이 의문시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근간으로 한 집단 안보체제, 유럽연합(EU), 그리고 인위적인 무역개방및 통화체제등은 아직 확고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동서냉전으로 거의 50년간 기능이 마비됐다 최근 소생기미를 보였던 유엔은 또다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더구나 세계 어느곳이나 정치인들은 「국익우선」만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워런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조차 95년 새해 미국의 외교기조를 언급하면서 『「국익만 따른다면」공화당 우위의 의회와도 아무런 문제없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물론 서방의 어느 국가도 나토나 EU등 국제 기구들이 자국의 국익을 거스르고 있다고는 판단하지 않는 것같다. 그러나 각국이 눈앞의 정치·경제적 실익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공통의 안보와 민주주의, 번영이라는 가치있는 오랜 목표를 모호하게 방치함으로써 「국익」이라는 정의는 더욱 의미가 좁혀들고 있다. 그동안 확고한 것처럼 느껴졌던 국제기구들의 위상이 침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두려움은 다소 사라졌지만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던 국가주의의 발호와 국가간 반목은 더욱 증폭되고있다. 『국제 외교관계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프랑스 고위관리들의 장담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현재 국제적 현안인 보스니아및 동유럽의 민족분규, 중동사태와 이라크금수해제 문제등을 둘러싼 흐름을 보면 세계는 프랑스―영국―러시아의 축과 미국독일아랍권의 축이 맞서는 새로운 외교구도가 형성되고있는 것같다.
이러한 구도는 매우 위험하다. 프랑스는 아직 유럽의 독자적이고 능동적인 방위 체제구축을 추구하고있지만 최근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미국이 독일을 끌어들이는 조짐을 보임에 따라 영국을 보다 중요한 외교 파트너로 간주하고있다. 하지만 프랑스가 미국을 유럽에서 축출하는게 독자적인 유럽의 방위를 추진하는데 기폭제가 되리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그 구상은 자칫 나토의 붕괴로 이어질 수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주축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도 주목거리다. 확대일로로 치닫는 EU의 향방을 좌우할 두 나라사이에는 외교노선에 있어 적지않은 견해차가 상존하고있다. 실례로 독일은 동유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프랑스는 북아프리카문제에 관심을 쏟고있다.
영국은 프랑스가 최근 유럽통합의 근간이 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환상에서 깨어나 보다 현실적인 노선을 택하고 있는데 대해 고무된 표정이다. 독일은 과거처럼 프랑스의 동부 완충지대역할을 더이상 원하지않고 있기때문에 나토와 EU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러시아 정정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독일을 견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있다.
유럽대륙은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아직 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다. 보다 질서있는 세계에서 서로의 국익을 고려하며 상호지원과 포용정책을 천명하는 새로운 외교기조를 채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노력과 결단이 수반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어느 서방의 주요국가도 이에 필요한 강력한 힘을 갖고있지 못하다. 국제정세는 사소한 이유로 붕괴될 수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초래된다면 프랑스 철학자인 알랭 핀키엘크라우가 갈파했듯 20세기는 쓸모없는 세기가 될 것이다.<정리=이상원기자>정리=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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