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 제쳐두고 현미식으로 새삶”/충북대병원 정형외과근무 이창성씨/밥 한술 1백20번씩 씹고 또 씹어/복부 지압법·풍욕·냉수마찰 병행/우연히 발견한 「진리」… 가족 반대불구 꾸준히 실천 건강되찾아 공해가 날로 심해감에 따라 공해병환자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간장병환자가 눈에 띄도록 증가해 가고 있어요. 간장병환자 중에서도 간염환자가 제일 많은데, 이 간염이 악화되면→간경화→간암으로 진전합니다. 간염은 공해병의 대표 기초병이기 때문에 이 병만 예방 치료할 수 있으면 여타의 공해병도 예방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간장병을 위시한 각종 공해병이 유발되는 근본원인과 발병경로에 관해서는 지난번에 쓴 「섬유식의 효능」 43회(94.12.22일자)∼44회(12.29일자)에서 자세히 말했으니 묵은 독자들은 복습을 하고 새 독자들은 구하여 읽고 난 다음에 다음을 읽기 바랍니다. 신문이라는 것은 한번 지나가 버리면 구하기가 힘드니 정기구독을 하기 바랍니다. 43·44회에서는 기초이론을 말하였고 이번 45회에서는 실지의 투병수기를 싣게 되었습니다.
이창성님의 간염투병수기가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모든 동포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소개하니 숙독·실천,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건강에 관한 진리는 성경·불경 이상으로 매일 같은 것을 반복 숙독하고서는 아예 제2의 천성으로 만들어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건강은 인생만사의, 특히 종교신앙의 기초입니다. 건전한 육신과 건전한 정신이 있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충고> 건강한 분도 병예방을 위해서 꼭 읽으십시오. 충고>
<안현필선생님께> 하늘 아래 땅위에서 가장 위대한 저의 스승이시여(인생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진작부터 인사드리려 했었는데 못 드렸습니다. 아무리 저 혼자 고마워하고 감사드려도(마음으로만) 저 혼자만의 것이 되고 말 것같아서 이렇게 감사의 글을 올리오며 저로 인해 또한 많은 분들이 용기와 자신을 갖고 실천해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현필선생님께>
선생님을 멀고 먼,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만났어도 그 인연으로 해서 저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손자뻘이 될만한 31세의 청년입니다. 현재 병원에 근무하고 있고 91년에 결혼하여 아기아빠도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당장 제 것으로 만들어 실행하고 받아 들였기에 오늘의 이 은혜롭고 고마운 생활을 하는 것같습니다.
저는 85년에 군대를 마치고 직장을 얻기 위해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어떻게든 좋은 직장을 다녀 홀로 계신 어머님께 효도하고자 마음 먹었죠. 그런데 실습을 나가(병원) 거의 마칠 무렵에 몸이 천근 만근이 되었습니다. 검사해 보니 급성 간염이라고 했습니다. 내과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니 당장 입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렴풋이 간염에 대해 배운 이론이 있었기에 앞이 캄캄하고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는 것같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엉터리로 알고 배웠던(얕은) 겉이론의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가 영세민혜택을 받고 있어서 부득이 도립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제게 큰 기대를 하신(장남이라서) 어머님은 우시면서 매일 쇠고기다 뭐다해서 그 먼 길을 싸오셨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걸 해오셨어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한달이 넘어도 검사결과가 신통치 않은지 내과 선생님은 고개만 갸우뚱갸우뚱하시며 일단 퇴원해서 안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와서 국가고시를 공부하며 벽에다 「나의 간장은 새롭게 태어난다!」 「나의 간장은 반드시 재생한다!」 「나는 반드시 국가고시에 합격한다!」 이렇게 써 붙여놓고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하며 운동했습니다. 실습병원에 있을 때 검사실에 근무하시던 어느 여자선생님이 『우리 몸 중에서 간장의 재생력이 가장 강하다』고 일러 주었기에 위의 표어를 써 붙이고 매일 눈만 뜨면 큰 소리로(마음 속) 외치고 외쳤습니다.
틈틈이 이 약국, 저 약국을 다니며 약사님들과 상담도 했지만 『특별한 약이 없다』 『안정하라』고 하였고 또 주는 약은 모두 비싸서 그냥 돌아오곤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자신있게), 한달을 기다리던 중 먼저 취직이 된 친구로부터 병원 약국에 자리가 있다는 연락이 와서 조심스런 마음으로 취직했습니다.
그땐 간장약만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무약」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몇 개월 근무하다 다시 두어달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눈물만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건강해져서 홀로 계신 어머님께 효도하고자 했는데…. 다시 퇴원해서 87년 3월 어느 일요일 친구녀석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드디어 선생님의 건강책자를 보게 되었고 거기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현미와 건강의 진리를 알게 되었고 또 생명의 이치도 알게 되었습니다(조금이나마). 『아하! 바로 이거다!』 선생님의 말씀 하나 하나는 제 마음에 와 닿았으며 우레처럼 섬광처럼 뒤흔들고 깨웠습니다.
저의 무지(현대의학), 어리석음(약에만 의존했던)이 단번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친구에게 『이 책 집에 가서 보고 갖다 주마』하고 빌려 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책 「체질개선건강법」 「공해시대건강법」 「영어책」도 신청해서 우편으로 받아 보고 뛸듯이 기뻐하며(밑줄치며, 색칠하며)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소책자」도 읽고 시내에 나가서 압력밥솥도 샀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시는 작은아버지께 연락해 쌀을 현미로 찧어 달라고 부탁해 바로 현미식으로 들어갔습니다.
첫 날 하오에 압력밥솥에 된 밥을 보니 노란 현미알이 그렇게도 이쁘게 보이고, 콩을 넣어서인지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한 입 한 입, 씹고 씹으며(1백20번씩) 우러나는 그 달콤한 맛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꿀같았습니다. 씹을 때마다 병이 낫고 생명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살이 「지륵지륵」 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에 부딪치게 됐습니다.
식구들과 대전쟁을 치르게 되었죠. 할머니는 『아침도 안 준다』 『치아가 없어 못 먹겠다』하시며 매우 서운해 하시고,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1백20번씩 씹느냐고 불평하시고, 직장과 학교에 다니는 두 여동생은 바쁘다고 투덜대고…. 참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책을 보여 드리며 선생님의 말씀을 설명해 드리며 설득하고 설득했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불평이 더해 갔습니다. 할 수 없이 「더 좋은 방법으로 하자」고 생각하고 순현미로만 짓던 밥을 할머니께서 드시기 좋게 일반쌀도 넣어 식구들 불평을 좀 덜고자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현미밥만 공기에 담아 먹고 또한 도시락까지 싸 가서 먹었습니다.
한 공기 먹는데 1시간씩, 한 술에 1백20번씩 열심히 씹고 또 씹었습니다. 식사하며 시간이 아까워 잡일 마무리도 하고 책도 읽어가며 먹었습니다. 어떤 땐 씹고 씹다가 그만 하도 졸려서 먹던 밥을 옆으로 밀어놓고 엎어져 잠을 잤습니다. 집에 오면 아침 저녁으로 세들어 사는 2층 옥상에 올라가 이렇게 했습니다.
안복행법(안현필 선생님의 복부지압법)과 풍욕― 또 내가 개발한 체조로 체력단련을 마음껏 했습니다. 의사들은 『안정하라, 고기 많이 먹어라, 약 꾸준히 먹어라』등 생명의 이치도 모르면서 거꾸로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놈의 먹기 싫은 고기는 왜 그리 괴롭게 먹어야 한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더 약해지는데 안정만 하라고 하는지…. 맹물만도 못한 현대의학에 혼자 큰 소리로 항변도 해 보았습니다.
현미식을 하며 일체 약도 버리고, 오로지 생명있는 현미와 약 살 돈으로 과일을 사는데 투자했습니다. 현미식 이틀 후 대변을 보는데 왜 그리 시원하게 쑥쑥 나오는지 한참 들여다 보며 신기해 했습니다. 꼭꼭 씹었는데도 현미알이 보였습니다. 대변이 잘 나오는 걸 보고는(전에는 삐질삐질) 아! 진짜 현미가 좋기는 좋은 거구나 하고 새삼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하얀 밥만 보면 아주 정이 뚝 떨어지고 어떤 땐 화도 나고―안현필 선생님이 내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뜨거운 염원으로 잔소리를 안 하실텐데 온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도 귀가 따갑도록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데 그걸 모르고 그토록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는 양반들이 죽은 시체들을 잘도 먹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분통도 터지고요. 식당같은 데 가면 저는 지금까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닙니다. 직장을 두 번 옮기며 제일 애로사항이 식사문제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흰 쌀로만 밥을 해 먹는지, 웬만하면 많이 굶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91년11월). 제 집사람과의 첫째 약속이 안현필선생님 소개와 「공해시대건강법」 「체질개선건강법」 책을 선물로 펴 보이며, 내 뜻과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면 우리 가족, 나아가 친척들께 모범이 되도록 자연식 실천을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죠. 집사람은 대찬성이었고 선생님의 뜻에 존경의 마음과 경탄의 말까지 했습니다.
소책자도 10권 받아서 저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환자)께 입이 닳도록 재삼 설명해 주고 꼭 실천할 수 있는 분께만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하고 나누어 주었죠. 실천을 해야만 선생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저의 작은 보람도(훗날) 느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죠. 우리 친척들께 먼저 권하기는 했는데 알고 보니까 실천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느낀 게 뭐냐면 「아무리 친척이라도 안 받아들이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리 가족이라도 더 모범이 되자고 했습니다. 저의 심정은 조금이라도 선생님의 그 크신 뜻과 훌륭하신 일에 멀리서나마 함께 호응하고 백분의 일, 억만분의 일이라도 협조해서 우리 국민들이 모두 건강하고 잘 살고 착하고 아름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럼 저의 현재 생활을 말씀드리죠. 1, 저는 현재 충북대병원 정형외과 CAST MAN(깁스실)으로 있고요. 2, 아침 5시께 기상해서 봄∼가을에는 운동겸 취미로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자연과 벗하며 작품(?)이랄까 사진도 찍고 산나물(쑥, 약뿌리, 나물등)을 캐오고 이것으로 술을 담그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합니다. 3, 식사는 물론 [현미+콩+보리쌀]. 반찬은 일반식단에 제철에 나는 걸 한껏 살리고 여름에는 오이+양파+식초 해서 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일품이고, 된장찌개에 풋고추+애호박이면 그만입니다.
제가 아침식사를 한동안 안 했었는데 어머니와 할머니의 성화에 그 먹기 싫은 아침을 두어술씩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고는 도망치듯 출근합니다. 어떤 땐 어머니와 먹기 싫은 밥 어떻게 먹느냐고 말다툼까지 했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로 자식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마음 아프게 할 수 없어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합니다. 출근은 주로 걸어서(속보로) 하고(약 3까지) 내가 제일 잘 걷는다는 마음으로 힘차고 당당하게 즐겁게(상쾌하게) 걷죠. 간혹 자전거도 이용하고 궂은 날은 통근버스.
아침 저녁이면(겨울에도) 냉수 건포마찰을 온 몸이 붉어지도록―김이 모락모락―하고, 하기 전에 변기에 앉아서 「안복행법」을 5분정도 합니다. 낮에는 직장 근처에 있는 산수를 떠다 놓고 1시간에 2분의 1컵 이상씩 들고(물론 집에서도) 규칙적으로 운동(15분)과 공부(45분)를 교대로 하죠.
우리 아기에겐 이유밀이라는 걸 없앴습니다. 대신 [현미볶음+콩볶음+찹쌀볶음]으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였죠. 아주 이쁘고 건강해서 병원에는 두번밖에 안 갔습니다(남자아이 15개월). 아기를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에 그지없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시집간 여동생들(둘 다)에게도 이미 단단히 위의 방법을 일러놓았죠. 요즈음 젊은 엄마들께 이 방법을 권하는 바입니다만 아직 분유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충고> 이상을 혼자서만 읽지 말고 친지―특히 환자에게 읽도록 권해주세요. 남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일이 바로 내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일입니다. 안현필건강연구소에서는 병으로 고생하는 불우한 동포를 구제하기 위해 작은 책을 만들어 무료로 배부하는 국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학교, 교회, 사업체, 기타 단체에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보내고, 또 개인에게는 친지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몇부를 여분으로 보내고 싶으나 송료때문에 뜻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여유가 있는대로 송료로 쓸 우표를 힘껏 많이 보내주시면, 이 국민운동을 보다 활기차게 할 수 있으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충고>
(우)152―600 서울 구로우체국 사서함 83호 안현필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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