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속엔 신통력 있는 동물로 등장/해월 음력10월·해방은 북서북 의미을해년 새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돼지꿈」은 횡재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돼지해 정월에 돼지꿈을 꾸면 운수대통한다고 믿어왔다. 또 자손이 귀한 집에서 아들을 얻으면 「돼지」라는 아명을 지어 무병장수를 빌기도 했다.
95년을 상징하는 돼지는 을해 정해 기해 신해 계해로 육십갑자에 다섯 번 드는 12지 마지막 동물이다.
해시는 하오9시부터 11시, 해월은 음력 10월, 해방은 북서북 방향을 말한다.
돼지는 우리의 신화나 설화 속에서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거나 왕자를 낳을 왕비를 점지해 주는 신통력 있는 동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유리왕편)에는 『왕 21년 3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교시(돼지)가 달아났다. 왕이 제물을 관장하는 설지에게 교시를 잡도록 명하니 국내성 위례암에 이르러 잡을 수 있었다. 설지가 돌아와「국내성 위례암은 산수가 깊고 험하며 땅은 오곡을 심기에 알맞습니다」라고 왕에게 아뢰었다.… 22년 10월에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
같은 책 산상왕편에 의하면 고구려의 동천왕은 돼지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왕7년 3월 왕에게 아들이 없어 기도하니 꿈에 천신이 나타나 소후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겠다고 말했다. 왕 12년 11월 교시가 달아났는데 주통촌의 한 처녀가 잡아주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산상왕이 잠행해 이 여자와 관계한 후 13년9월에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동천왕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길상의 동물로 길조를 나타내는 돼지는 재산이나 복의 근원으로서 「업」, 혹은 집안의 수호신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천진기학예사(국립중앙박물관)는 『특히 꿈에 본 돼지는 대단한 귀물로 친다. 그러나 돼지꿈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돼지가 꿈에 죽었다거나 병든 돼지가 신음을 하고 있으면 나쁜 꿈이 된다』고 말한다.
민속학자들은 『돼지꿈과 용꿈을 길몽의 쌍벽』이라고 평가한다. 상상의 동물로 왕권을 상징하는 용은 권력을 나타내며 용꿈은 장차 이름을 떨칠 사내아이의 탄생을 알려주는 태몽 중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천학예사는 『그러나 돼지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으로 길조와 행운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에 용꿈보다 한 수 위』라고 말했다.
돼지가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기 시작한 때는 약 2천년 전으로 추측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파루」(삼국지 위지 동이전 파루)조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며 그 고기를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른다』는 기록 등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재래종은 조선시대 말까지 사육되다 외래종이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됐다. 경북 김천의 지례돈과 경남 사천의 사천돈이 재래종으로 유명하며 제주도에는 검고 입이 길쭉한 먹통돼지가 남아 있다.
사고로 얼룩졌던 지난해와는 달리 모두 돼지꿈을 꿀 수 있는 새해가 되어야겠다.<서사봉기자>서사봉기자>
◎돼지해 출생 걸출한 인물 많다/이성계·방정환·비스마르크등/연구심 강하고 노력파 많아
돼지해에는 국내외에서 걸출한 인물이 많이 태어났다.
돼지해에 태어난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조 5백년의 터전을 마련한 이성계(1335∼1408), 개혁정치를 편 광해군(1575∼1641),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 개화를 부르짖던 비운의 정객 김옥균(1851∼1894) 등이 있다. 또 이승만(1875∼1965)초대대통령, 장면(1899∼1966)전 국무총리, 김활란(1899∼1970) 전이화여대총장, 어린이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소파 방정환(1899∼1931), 요절한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3∼1956) 등이 돼지해에 태어났다.
『돼지띠는 연구심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지 끈질기게 붙들고 노력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역술가들은 말한다.
국제적으로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프랑스의 퐁피두대통령, 중국의 장지에스(장개석) 총통, 아프리카에서 인술을 베푼 슈바이처박사,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이 돼지띠이다.
역사적으로 돼지해에는 상서로운 일이 많았다. 한글이 제정된 1443년이 계해년 이었고, 고려 광종 14년인 963년에는 유명한 빈민구제 기관 제위보가 설치됐다. 서기 63년에는 백제가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243년에는 국운이 흥성해 큰 제단을 만들고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순조 3년인 1803년에는 평양부, 함흥부와 창덕궁의 인정전에 큰 불이 나기도 했다.
1863년에는 흥선군 이하응(1820∼1898)이 대원군으로 책봉되면서 그의 둘째아들 재황이 고종으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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