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에 서면 어느 해인들 그해의 의미가 새롭지 않을까마는, 1995년은 각별하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어야할 한해다. 광복 50주년을 맞는다.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후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까지 반세기,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그동안 경제는 성장하고 사회는 발전하고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만큼 이룩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맨손의 나라가 이만큼 자란 것은 참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성취에 도취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이 부르던 만세를 모든 부자유에서 해방된 제2의 광복의 날 다시 부르기 위해 매진해온 50년이었다. 지금이 그 만세의 때인가.
실로 지난 50년은 생존대 생존의 투쟁의 역사였다. 모든 것이 투쟁의 논리에 귀결되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였다. 정직은 약자의 철학이었다. 비리와 사위와 불도덕이 게임의 규칙인 한 자유는 없다. 해방은 멀었다. 아직 광복이 되지 않은 것이다.
올해는 또 남북 분단 50년이 되는 해다.
광복과 함께 동강난 조국은 여전히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남북통일은 반세기동안 민족의 지상의 염원이었고 지고의 가치였고 지선의 덕목이었다. 그럼에도 분단은 더욱 고착되어만 가고 비원은 오히려 녹슬어가고 있다. 지금껏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완전한 광복이 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다.
실질적인 광복은 이제부터다. 올해는 제2의 광복의 원년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역사에 끌려다니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역사를 끌고 갈 때다. 과거의 역사에 매달리고 있을 겨를이 없다. 역사에 앞장서야 한다. 시간에 떠밀려 다니는 역사여서는 안된다. 시간을 헤엄쳐 나가는 역사라야 한다. 광복 50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발흥에서 시작하여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끝난 세기다. 20세기의 역할은 끝났다. 이미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전쟁의 시대는 가고 경쟁의 시대가 왔다. 이것이 21세기의 새 질서다. 투쟁의 무장을 풀고 경주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할 세기가 왔다. 그래서 전세계의 도처에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어느 나라고 상응한 처변없이는 낙오한다. 오늘의 평화는 전쟁보다 뜨겁다.
올해 1월1일부터 출범하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는 바로 21세기의 서곡이다. 세계는 이제 하나가 되어간다. 나라의 울타리가 자꾸 낮아진다. 키 큰 나라들과 키를 가지런히 하지 않으면 소인국이 되어버릴 때가 왔다.
정부가 국정지표로 「세계화」를 내세워 올해를 그 진군의 원년으로 삼은 것도 시대적 요청이다.
「세계화」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21세기의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자는데 있다. 그러자면 먼저 국민들이 세계인화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세계인의 보편성을 가질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나라가 된다. 그러면 세계인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어제의 한국인으로는 안된다.
작년 한햇동안 일어난 엄청난 사건·사고들은 지난 50년동안 쌓인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과 허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었다. 무너질 것이 무너지고 터질 것이 터졌다. 차라리 이제 그위에 모든 것을 새로 세울 수 있다.
새해를 맞으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저마다 지난날의 자신과 절교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50년묵은 제도와 관행과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해왔다. 인공위성이 지구의 인력을 벗어날 때와 같은 탈출속도없이는 구습의 인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묵은 해의 달력을 버리듯 낡은 의식을 버려야 한다. 사고의 대전환이다.
올해는 지방자치단체의 4대선거가 치러진다. 50년동안 그토록 많은 희생을 바치고도 못다키운 민주주의의 정착 또한 혁명적인 선거의식의 개혁없이는 어렵다. 「지방화」를 위한 지방자치의 길도 세계인의 의식수준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계화는 하나의 개화운동이다. 우리는 제2의 개화기를 맞고있다. 봉건적인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선진문물을 개방함으로써 근대사회를 이끌어 온 것이 개화시대였다면, 지금 우리는 그과정을 새로 겪고 있다.
세계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하나의 경장이기도 하다. 작년은 갑오경장 1백주년이었다. 1세기만에 새로운 경장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통일을 통탄하는 것은 분단의 아픔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화로 가자면 전민족의 합일된 역량이 필요하다.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자면 통일한국의 총화가 절실하다. 분단 50년이 너무나 아쉬운 시점이다.
진실로 우리는 이제부터 「신작민」(서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국민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어제와 전혀 다른 오늘의 국민이 되지 않고는 광복50년은 전혀 무의미하다. 국민을 개조하면 나라는 저절로 개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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